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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소설 본문

거짓말이다. 김탁환 소설

나무와 들풀 2016. 8. 25. 15:38


이게 소설인가?

김탁환 장편 소설 거짓말이다를 읽고 드는 몇 가지 생각들 -

 

4교시 국어 시간 행복한 책읽기시간, 김탁환 장편 소설 거짓말이다를 읽었다. 생존학생인 박윤솔이 송나래의 생일날 와서 그날의 일들을 얘기하는 장면을 읽다 눈물이 났다. 교사가 애들 앞에서 소설 읽으며 눈물 찔찔 짜는 게 부끄러워 눈물을 말리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는 순간, 유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피부, 발그레한 볼, 긴 머리로 다소곳이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이쁜 아이. 눈이 마주친 순간 씽끗 미소가 나왔고, 유진이도 씽끗 웃는다. 그러자 3학년 7반 교실은 갑자기 세월호 기울어진 배 안이 된다. ! 이 아이들을 다 잃을 생각을 하니 참았던 눈물이 더 난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책을 덮었다.

세월호 아이들은 배가 기울며 침몰하자 안내 방송대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다. 허둥지둥 나가다 참사를 당할까봐, 자신만 살려고 하는 허둥댐이 모두의 구조됨을 방해할까봐 차분히기다렸다. 그러다 이렇게 기다리면 안 되겠다싶을 정도로 배가 기울자 탈출을 시도했다. 거기에 송나래가 있었다. 반장이기에 아이들을 먼저 올려보내고 나가려다 침몰하는 속도와 떨어지고 붕괴되는 선실의 집기 속에서 박윤솔이까지만 탈출시키고 물 속에 잠겨 저 심해 속으로 배와 함께 가라앉게 되었다.

이 교실이 세월호라면, 나라도, 아이들을 먼저 올려보냈을 것이다. 설마 죽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구조될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너희들 먼저, 볼 발그레한 너희들 먼저 올려보내고 내가 올라가야지 했을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만나더라도 할 말이 있지, 볼 면목이 있지. 교실에 있는 내가 그 상황을 마주하며 눈물이 흐른다.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결코 먼저 나오지 않았다는 말들을 들어주고 공감해야 한다. 결코 혼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고 고개를 끄덕여줘야 한다.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고, 누구나 그땐 그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7반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가 맑고 곱고 새롭다. 아이들의 앳되고 고운 얼굴들이 더 아프게 파고든다.

사고 후 1년이 지나고, 또 한 계절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왜 죽었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언론은 정부가 하는 거짓 발표를 그대로 베꼈는지 납득이 갈 만한 대답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는 생각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증폭된다. 오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그 궁금증에 민간잠수사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더 얹어졌다. 국가는 그들을 어떻게 할 요량일까? 어쩌다 내가 이런 나라에서 자식 낳고 살고 있을까 겁도 없이.

올해 3월 남이섬으로 교직원 워크샵을 갔을 때,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을 탈 때 겁이 났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무렇지도 않게 났다. 배가 사고가 나서 가라앉아도 아무도 구조해주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물이 차가운 3월이라면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교사들이 바보 같이 가만히 있다가 배와 함께 빠져 죽었다고 죽은 자를 비난할 것이다. 안전함에 대한 신뢰는 세월호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리고 나는 평생 페리호라는 것을 탈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로 페리호를 타고 수학여행 가는 것은 앞으로 내 교사 인생에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자고 한다면, 절대로 나는 나와 우리 아이들을 페리호로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로 들어가는 오하나마호에서 푸른 바다와 밤이 밀려오며 내려앉는 어둠과 컴컴한 밤바다, 바다 내음, 제주가 보이고 해무와 돌고래 서넛이 바다를 줄넘기 하며 타 넘는 경쾌한 모습을 앞으로는 못 볼 것이다. 밤새 뱃전에서 두런거리며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수학 여행 방법 중의 하나를 국가로부터 거세당했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왜 탈출하지 않았니?, 왜 가만히 있었니?’가 아니었다. 그렇게 물어서는 절대로 안 되었었다. 416이후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고,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 말들을 들으며 치미는 화와 분함을 그대로 꾹꾹 눌렀을 엄마, 아빠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내 자식이 순진하고 어리숙해서 죽었다고!! 모르니까, 정말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416 이후의 교육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416 이후의 안전한 사회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 실천을 했어야 했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거짓말이다를 읽으며 소설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했다. 팩트만이 사실인가? 이것도 팩트인데, 허구라고? 사람 이름 가명으로 쓴 것, 결말을 팩트가 아닌 작가가 기원하는 바로 끝내서 허구라고? 이것은 사람 이름만 가명으로 쓴 사실이다. 소설이 아니다. 세월호와 그 이후에 벌어진 현실들이다. 세월호에 대해 추모만 하고, 기억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을 상세하게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도리를 요구해야 한다.

 

삶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지만 한 사람이 중요하다. 세월호 유가족이 내내 강조하듯이, 해경이든 선원이든, 한 사람만 선내로 들어가서, 가만있지 말고 빨리 다 나오라고 했다면, 304면이나 목숨을 잃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살아서 탈출했을 것이다. 2014416일 아침엔 그 한 사람이 없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여전히 그 한 사람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이기엔 너무도 두려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