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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순례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2021

나무와 들풀 2024. 8. 4. 11:22

이 소설은 나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 내가 비교적 늦게 읽은 편이다. 입소문으로 유명한 책을 잘 읽지 않는 내 탓이다. 그럼에도 ‘순례 주택’을 읽은 이유는 국어 교사들 그룹에서도 입소문이 나왔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와! 멋진 작품인데’ 하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팍팍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따뜻한 관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대리만족은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잡으면 바로 한 권을 끝내는 집중도가 있어 책 읽기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라도 흥미롭게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이 순례(순례 주택 건물주인 등장인물) 씨가 내린 어른에 대한 정의다.
‘어른이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사람’

사람들이 동안(童顏)에 열광하는 현실이 비정상인 사회 현상으로 생각했었다. 헬리콥터 맘의 행태도 이상했다. 몇 년 전 시청에서 근무할 때 신임 직원의 부모가 사무실로 직원을 데리고 와서 잘 부탁한다며 계장님, 과장님, 국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한 적도 있다. 다 큰 어른을 직장에 데리고 가서 상사에게 인사를 드린다니, 학창 시절 전학 다닐 때 부모가 학교에 데리고 가는 광경과 오버 랩 되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교사들도 부모가 학교에 같이 와서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가기도 한다니 영원히 크지 않는 꼬마 유령 캐스퍼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가끔 티비를 보면 문명의 지배를 덜 받는 곳일수록 빨리 시집, 장가를 가서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자립하여 사는 것을 본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른 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동안에 열광하고, 성인 나이가 지나도 부모에게 독립을 못 하고 아이처럼 의탁하는 것을 본다. 다 큰 처녀가 혀 짧은 소리로 앵앵댈 때 어른 되는 걸 거부하고 계속 어린아이로 살고 싶은 심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지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원더 그랜디움’에 사는 사람들 커뮤니티 모임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누가 누가 더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고 있는지(누가 누가 더 어린지)’ 자랑하는 듯한 장면 묘사로.

그리하여 이 소설은 어른들이 모여 사는 ‘거북마을(빌라촌)’과 건너편 어린 어른들이 사는 ‘원더 그랜디움’을 대비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어른답게 사는 것인지 보여준다. 주인공 오수림의 부모는 ‘원더 그랜디움’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어린 어른들의 끝판을 보여준다. 결국 망해서 ‘원더 그랜디움’에서 쫓겨나 ‘거북마을’의 ‘순례 주택’에 입주하며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도 서서히 어른으로 성숙해 간다.

청소년이지만 어른다움을 갖춘 수림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기에 순례 주택에 사는 ‘박사님’이 시간 강사로 전전긍긍하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빌라촌에 사는 것조차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어이없는 고용구조 따위나, 순례 씨의 ‘때탑(때밀이로 번 돈으로 산 거북 빌라로 이 소설의 중심 배경)’으로 빌라를 살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이나, 그 빌라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치솟는 것까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국어 시간 시점 수업으로 적절하다.

작가는 코로나로 지친 어린 순례자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녹이는 알베르게 같은 마을이 되기를 기원하며 썼다고 한다. 그렇지만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부터 그건 자신의 바람보다 독자가 정하게 되는 것.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벗어나,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감상한다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 어쩌면 드러내지 않고 숨긴 더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서 오는 현실의 답답함이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