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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덩이,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창비, 12600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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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덩이,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창비, 12600원

나무와 들풀 2023. 10. 14. 19:17

 

구덩이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번역, 창비, 12,600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왜 파게 시키는지 알 때쯤이면 이 소설을 잡은 손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려면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주인공 스탠리 가족의 아버지며,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 그 가계도와 주변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기엔 민수와 민수의 아버지, 김정아 선생님처럼 삼 음절을 넘지 않는 이름 체계에 길들여진 나의 사고가 내용 파악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모였는데 책만 볼 거냐고!’

이 소설은 작가가 치밀하게 만들어둔 각각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액자로 만들어져 각 액자에서 그려진 그림이 이전 액자에서 어떤 그림을 나타난 결과였는지 꿰맞추는 묘미가 있다. 시골집에 가면 사진으로 장식된 벽에서 나의 갓난아기 때 모습과 결혼식 때 부모님의 모습을 찾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볼 수 있듯, 등장 인물들의 조상대대로 이야기가 각각의 액자에 담겨 있다. 오늘을 사는 내가 부모님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부모님의 삶도 그 부모님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인연의 인과응보 속에서 오늘 나는 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조상대대로의 삶이 원인이 되어 자손들에게 전이된다. 결국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대대손손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인가!

이 소설은 원제 ‘Holes’. 그 원제 그대로 2003년에 미국의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이 시고니 위버와 존 보이트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12세 이상 관람이다. 소설을 읽은 후 가족과 함께 영화로도 감상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이야기도 나눈다면 추석 연휴 심심할 틈 없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가족 중 누군가는 영화를 본 후 뒹굴어 다니는 소설책을 집어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