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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1. ‘BRAVO! YOU WIN!!’

나무와 들풀 2023. 10. 24. 09:16

 

지난 주에 나눠드렸던 활동지 꺼냅니다.”

진도 다 나간 거 아니예요?”

오늘까지 하면 다 나갈 수 있어요.”

~ 다음 주가 시험인데 아직까지 진도를 다 나가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말이 돼?”

오늘은 목요일이고, 시험 전까지 내일 한 시간이 남아 있는 시점이다.

현철이가 정확히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깨어 있으면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스마트폰 하다가 몇 번이나 주의를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는 걸 서너 번씩 깨우거나, 어떨 땐 깨워도 버티면서 깊은 잠에서 못 깨어나는 것처럼 하는 현철씨가 시험 진도 운운하는 걸 듣는 순간! 나는 개빡쳐 버렸다. 그 말을 한 사람이 현철씨만 아니었어도,

~ 이번 한 번만 봐줘. 담엔 좀 더 일찍 끝내려고 노오력 할게. 그렇지만 이게 완전 늦은 건 아니잖아?”

~, 맞아요, 괜찮아요, 진도 안 나갔어?” 등등의 아기자기한 대화로 평화로운 수업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철씨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난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쌓였던 감정이 그 틈을 바로 치고 나왔다. 정말 나도 모르겠다. 노련하지 못하게! 오늘! ! 교탁을 손으로 탕 치며! 현철이의 말에 반응을 했는지!’

그럼 너만 안 하면 되잖아.” 여기까지만 했어도 되었다. 아니 살포시 웃으며했으면 됐을 거다. 그런데 하기 싫으면 하지마!”까지 바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순간 교실은 싸아해졌고, 아이들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며, 현철이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1, 2초의 순간은 며칠 간 내 속에 남아 나를 긁어댈 것이다. 어쩌자고 교탁을 손으로 치는 동시에 그런 말이 세트가 되어 튀어나왔을까!

정적이 휩싸인 교실에서 아이들이 모둠을 만드는 걸 보던 현철이는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바로 무릎 담요를 꺼내 머리에 덮어쓰고 엎드려 버린다.

지난 주에 나눠준 지문이 실린 활동지 세 장 꺼내세요. 오늘 이 지문 다 갈 수 있어요.”

아니, 나갈 수 없다. 나가려면 그냥 나 혼자 떠들면 되겠지만, 내가 거기까지는 차마 안 되는 걸 나도 안다. 그럼 나는 왜 현철이에게 화를 낸 걸까?

너 드디어 돌았구나. 진도를 못 뺀 건 사실이고, 애가 그걸 말할 수 있고, 그러니까 너는 오늘 애한테 평소에 쌓인 감정을 터트린 거고

수업 내내 혼자 마음에 상처를 내며 전전긍긍하는데 바로 옆에서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현철씨 처음엔 잠이 안 와서 계속 꿈지럭대더니 수업 중반을 넘긴 지금 모둠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낮게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다.

‘BRAVO! YOU WIN!!’

(2023.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