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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17. 3월 1일, 새해를 맞아

나무와 들풀 2024. 3. 3. 12:52

3월 1일. 새 학기 시작이다. 달력의 연도가 바뀌고 설날이 지나도 학교 시계는 3월 1일이 시작이다. 그래서 학교 오래 다니다 보면 숫자가 바뀌는 새해는 남의 생각이고, 3월 1일 지나야 새해가 내 생각 안으로 들어온다.

지난 2월 새 학기 맞이 연수에선 작년 9월에 새롭게 발령받아서 온 교장 샘이 느닷없이 학교 비전을 새롭게 고쳐보았다면서 파워포인트를 띄워 몇 가지를 고친 것을 보여주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학교 비전을 교장 혼자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굳이 혼자 끙끙대면서 고쳤다니 말이다. 다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며 만든 비전도 교사가 다음 해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서 흐려지고, 언제 그랬냐 싶게 원래 느슨하고 별 생각 없는 문화로 돌아가는데, 교장 혼자 만든 비전을 전체에게 발표한다고 해서 그게 실현된다고 믿는 건가, 아니면 발표했으니 그냥 서류나 계획서에나 따박따박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쨌든 혼자 북 치고 장구 칠 테니 따라오기나 해라이므로 학교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가질 필요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퇴근 하면 되겠다.

연수 기간엔 학생들 임시 소집일도 있었다. 올해는 1학년 뒷반 담임이 되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서 교과서 나눠주고, 개학일 일정 소개와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짧은 안내 시간을 가졌다. 굳이 입학도 하지 않은 남의 학교 소속 학생들을 마치 우리 학생인 것처럼 방학 기간에 불러 교과서를 나눠주고, 교복이 어떻고, 등교 시간은 어떻고 하는 안내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또 교실에서 만나니 학생들의 떨림과 설렘, 두려움이 느껴져서 나도 막 가슴이 설레면서 이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 개학이 기다려졌다.

새 학기 연수에서 평가 계획서와 교과진도계획서 등을 안내하며 진도계획서가 작년과 많이 달라졌으니 주의해서 작성하라고 하는데, 예시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나 어지간히 IB를 흉내 내고 싶었나 보다. 교육과정 문서에도 없는 평가 방법인 에세이평가니, 퀴즈니 하며 ‘씨부린’ 것을 보니 ‘교육청아, 너도 참 안 됐고 불쌍타. 그렇게 IB가 좋으냐.’ 싶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국가교육과정인데 왜 그렇게 틈만 나면 IB를 가져오지 못해 안달인지, 그렇다면 대놓고 IB처럼 하라고 하든지.

이번 주는 내내 1학년 국어과 교사에게 평가계획 쓴 것 보내서 검토 받았고, 개학하면 바로 수업을 할 활동지를 2차시 만들어서 보내고 검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괜찮다고 하면 3월 4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활동지 맡기면 1교시 전에 인쇄물이 나오니 수업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인쇄실 주무관이 인쇄물 맡기면 바로바로 해줘서 어찌나 수업에 도움이 되는지, 교장, 교감, 행정실장보다 수업 지원에는 최고라고 느껴질 정도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작은 선물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이놈의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 탓에 마음만 있었다.

따뜻한 삼일절이다. 겨울 방학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봄이 왔으니 끝나가는 방학이 아쉽기도 하지만 빨리 개학이 왔으면 좋겠다. 이거 뭔 소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