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중반부터 우리학교는 24학년도 학교 운영을 위한 다양한 협의를 하기 위해 학교에 출근을 한다. 방학 중 41조 연수의 내용에는 학생종합생활기록부 점검(앞으로는 생기부)이 없지만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생기부 점검을 방학 계획에 포함시켜서 1월 31일까지 하고, 2월 8일까지 발견된 오류 수정을 했다.
매사 치밀하지 못하고 덜렁덜렁하는 나는 교무부 생기부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를 앞 부분만 읽고 첨부물에 붙은 구글 스프래드 시트는 펼쳐 보지 않고, 내 나름의 상상으로 생기부 점검을 했다.
내가 했던 작업은 우리반 학생들 생기부와 내가 들어가는 반 과목별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앞으로는 ‘과세특’), 동아리 활동 상황 기록을 점검한 후 고치는 것이었다. 메신저 밑에 구글 주소는 아마도 담임이 점검하면서 우리반 학생 과세특이나 동아리 기록에서 수정할 사항을 적어놓는 스프래드 시트일 것이라고 추즉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작업들을 여러 날 했다.
그런데(!) 생기부 점검 마감 하루 전, 다른 교사들의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시트를 열어본 순간, 오 마이 갓! 생기부 점검 방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 방식은 학년을 교차하여 1학년은 2학년 담임, 부담임과 3학년 부담임이, 2학년은 1학년 담임과 부담임, 3학년 담임이 10명 내외의 학생들 생기부를 점검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 나는 지금껏 우리반 생기부에서 발견된 오류를 빽빽이 A4 용지에 적어 두었는데, 이제 그것을 시트에다 다른 교사가 점검한 것과 비교하며 발견된 것은 버리고, 발견하지 못한 것은 기록해야 했다. “안 할란다. 학교 업무를 이런 식으로 분업하면,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해야 하는가”했다가, “아니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한 사람이 본 것보다 두 사람이 본 것이 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하는 자위적인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다 내가 점검한 것과 다른 교사가 점검한 것을 비교해 볼 요량으로 우리반 시트에 올린 점검 항목을 봤는데, 교사가 제대로 점검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점검 시스템에서 오는 점검 불가능한 것들이 당연히(!) 기록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우리반 2번 00과목 과세특이 26번과, 3번의 과세특이 29번과 글자 한 자도 빼지 않고 똑같은 것. 우리반은 미술중점학급이라, 학생들의 진로는 전부 미술 계열인데 은영이의 @@ 과목 과세특엔 ‘보건 계열 진로를 희망하여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기록하였고, 성지의 과세특엔 ‘경영 계열의 진로를 희망하여 어쩌고 저쩌고’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걸 오류로 점검한 교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있기도’의 경우는 미술중점반 담임 교사였고, ‘없기도’는 다른 학년 부담임 교사였으니 발견할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점검 시스템의 잘못이지.
방학 전 1학년 교무실의 담임 교사들이 정신줄을 놓을 지경으로 생기부 점검을 할 때 과세특 중 일부 과목은 점검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방학을 하는 날까지도 기록을 다 하지 않은 과목도 있었고, 하더라도 한두 줄 정도만 입력한 과목도 있었다. 어떤 과목은 기록의 내용이 단원 성취기준을 약간 변형한 것도 있었고, 어떤 과목은 교사가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내용의 기록도 있었다.
그래서 수정을 요청했고, 그 수정은 방학 동안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니 방학 후 그 교사들이 제대로 입력한 후에야 제대로 된 점검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교사들이 언제까지 수정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검 계획엔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계획대로 날짜에 맞게 점검을 하면서 보니 그 교사들이 수정을 하긴 했는데, 담임이라 그런지 그 결과가 수정을 하기 전보다는 낫지만 이 정도가 수정한 것이면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발령이 났을 때, 두려움도 있었다. 중학교는 입시교육과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기에 수업이나 교육과정에서 나의 의지와 노력이 많이 스며들 수 있으나 고등학교는 그게 어려울 수 있을 것이란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 진로 진학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줘야 할 텐데 빠른 시간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컸다. 그래서 학교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학교에서는 입시를 중시했고 특별히 교장 선생님이 교사들에게 잘해 달라고 당부했기에, 학교가 학생들이 입시 준비를 잘할 수 있게 시스템으로 구축했으리라. 특히 생기부 작성 같은 진로 진학과 직결되는 분야는 중학교 교사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동료 교사와 협력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데 2년째 생활하면서 참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그런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수능이 중요하고, 학생들 대학 진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전문가로 만드는 학교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
누군가 ‘당신은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교사가 성장하는 학교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할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학교가 전문적 학습 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러 연구물 역시 그 필요성을 말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고등학교에 와서 성장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동료들의 도움과 나의 노력이었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2년이 막 지나려고 하는 이 순간이 참 비참할 것이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다.
‘우리 학교만 이럴까?’
2024.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