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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46) "계엄은 미친 짓, 제정신으로 할 수 있어?"

나무와 들풀 2024. 12. 14. 09:10

수행평가 마감일을 앞두고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채점하다 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서 핸드폰을 보는데 밤새 카톡이 150개가 넘었다. 믿을 수 없는 문자 폭탄에 단체 톡방에서 무슨 일을 벌어져 격론을 벌였나 싶었다.

그런데 저녁 10시 이후에는 톡을 하지 않는 우리 반톡에도 글이 올라왔기에 봤더니 윤석렬이 티비로 계엄령을 선포하는 장면 캡쳐가 올라왔고, 그 밑에 몇 명 학생의 반응이 있다. 당연히 AI 윤석렬로 만든 가짜 뉴스라 생각하고, 얼마나 시험 보기가 싫었으면 이런 가짜 뉴스를 반톡에 올렸을까 했다. 그리고 문제의 140개가 넘는 단체 톡을 열었는데, 그 화면 캡쳐가 가짜가 아닌 현실이었고, 사람들은 그 시간에 국회로 갔거나 밤새 두려움에 떨고 걱정하며 톡을 나눈 것이었다.

‘파란 패딩을 입고 검정 모자를 쓴 69세 000씨 찾습니다.’라는 지자체의 문자도, ‘철도파업으로 혼잡하니 시각표를 이용해서 출근하라는’ 문자도, ‘날씨가 어쩌고 하니 위험에 대비하라’하는 행정안전부의 안전 문자도 하나도 없던 밤이었다. 나라에 그런 큰일이 벌어졌는데, 아무런 안내도 없는 바람에 단잠을 푹 잔 밤이었다.

비상계엄(물론 불법이지만)이 해제되었는지 알 수 없어 창밖을 보니 차가 도로를 다니고 있었다. 평온해 보였다. 새벽에 수영장으로 향했다. 거기 가면 무엇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가는 동안 도로는 평소와 같았다. 도대체 뭐지? 수영장 탈의실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 운동복을 평상시처럼 갈아입는 모습을 보자 그 크로테스크한 우리 일상적인 모습에 웃음이 빵 터졌다.

“왜 웃어요?”
“간밤에 계엄령이 있었다는데, 우리가 이렇게 수영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요.”
“그러게요.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잤어요. 미친 놈이지!”

아침 조회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고 서로에게 말을 하며, 제발 학사 일정대로 기말고사를 보고 예정대로 방학이 이어지길 기원했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한 학생이

“샘, 어제 밤 계엄령에 대해 한 마디 해 주세요. 너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내가 말해봐야 무슨 영향력이 있겠니?”
“아니 저희가 답답해서 그래요.”

학생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듣는 순간 애써 눌러온 감정이 확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발로 바닥을 구르며

“아니 미친 거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냐고. 제 정신으로 그럴 수 있는 일이야?”
“맞아요. 우리도 너무 답답했어요. 샘이 그렇게 말해 주시니 이제 속이 시원해졌어요. 진도 나가요.” 한다.

그 계엄령의 밤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내란죄를 범한 자를 헌법으로 막으려고 했던 탄핵은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의 투표 거부로 물 건너갔다. 그리고 발 빠르게 ‘질서 있는 퇴진’ 운운한다. 법으로 밥 먹고 살았다는 자들이 헌법정신이나 절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반헌법적인 말을 떠든다.

오늘 수업에 들어가면 우리 학생들은 나에게 또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나는 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그나저나 학생들 방학이 오면 이 사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느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