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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서평) 청구회 추억/신영복 글, 돌베개 본문
수필을 이렇게 힘 있게 긴 이야기로 쓸 수 있는 것은 값진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신영복 선생님이었기에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청구회 추억’은 내가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담론’의 대화체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체다. 어느 봄날 ‘답청 놀이’에서 만난 여섯 명의 국민학생들과 3년 동안 사귀었던 이야기를 건조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왜 이렇게 문체가 건조할까? 아마도 선생님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기에 써서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그 긴박한 시기에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아마도 그것은 국민학교 친구들과 순수하게 나눈 우정을 추억하며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 한 것이 아닐까. 죽음의 두려움이 나를 갉아 먹을 때,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일들을 추억하는 순간 어느덧 공포는 사라지고 그때로 돌아가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 것이야말로 마지막을 존엄하게 지키며 고귀한 품격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서오릉으로 ‘답청 놀이’를 가며 만난 가난한 초등학생에게 끌렸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처음 본 아이들에게 끌린 이유는 그들 모습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가난에서 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을 걸었으며, 자연스럽게 사귄 후 지속적으로 만나며 진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선생님은 친구처럼, 선생처럼 그들과 만나며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그들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책 구석구석에는 선생님이 사람을 대하는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초등학생을 어린이 취급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생각하며 그들과 평등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며 가능한 일일까? 초등학생들이 2년 이상 설레는 마음으로 어른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진심을 다하는 것은 어떤 어른일 때 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신영복 선생님이기에 할 수 있었을 거다. 진정한 교사란 어때야 하는지 일부러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차고 넘쳐 자연스럽게 비어져 나온 것이다.
여섯 초등학생의 모임인 ‘청구회’를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받으며 그 정체와 회원 명단을 대라는 추궁 앞에서 얼마나 정신이 아뜩했을까? 그래서 선생님은 서둘러 그 기록을 아무도 모르게 남겼을 것이다. 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 약속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잡혀가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 선생님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감옥에서 지급하는 휴지에 변론을 작성해야 하는 펜으로 눌러 쓰신 것이다. 그렇기에 글에 어떤 기교나 꾸밈이 없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겉은 건조하지만 속은 인간 존중에 대한 태도, 선생 된 자라면 어떤 마음과 태도로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지가 놀라우리만큼 자세하게 서술된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신의와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 이 아름다운 만남을 가로막은 독재정권의 폭력. 메마른 글투에서 감동에 찬 눈물을 흘리며 국어 교사로 진정 선생님의 글발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올해 선생님의 글 ‘함께 맞는 비’를 공통국어에서 교재로 다뤘다.
학생들은 그 글을 보며
“샘, 분명 고전은 아닌데, 고전 같은 글이에요.”라고 했고, 우리는 끙끙대며 그 작품을 읽고 이해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깊이 있게 봤더라면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왜 너무 쉬워서 고등학생용 교재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너무나 소박해서 아름다운 그림과 매끄러운 영어 번역이 곁들여진 ‘청구회 추억’. 계엄령 다음날 이 글을 쓰며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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