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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45) 첫눈이 어마무시하게 내렸다

나무와 들풀 2024. 12. 10. 10:24

수업을 하며 언뜻언뜻 비치는 창으로 습기를 잔뜩 머금은 탐스러운 눈이 중력에 이끌려 사정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이 신비로웠다.

수업 끝나기 10분 전, 위층에서 우르르 내려가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운동장에서 ‘꺅꺅’하며 떠드는 소리에 영문을 모른 채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아! 3학년들 수능도 끝났으니 수업 일찍 끝내고 눈싸움하러 나갔구나.’라고 생각했다. 쏟아지는 눈 폭탄을 보니 갑자기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우리 오늘 집에 가지 말자.” 했더니,
“왜요?”
“눈이 오잖아.”
“눈 오는데 왜 집에 안 가요?”
“그냥. 좋으니까!”
“네~ 좋아요. 우리 같이 집에 가지 말아요.”

난데없는 폭설과 그것을 즐기는 눈싸움 소리를 들으며 헛소리들을 잠시 주고받았는데, 이미 들뜬 학생들은 종이 치자마자 날쌔게 밖으로 뛰어나간다.

“눈싸움 할 거면 다른 눈 쓰지 말고 내 차 앞유리창에 묻은 눈 써줘요.”

이미 나가고 없는 등에 대고 내 차가 어떤 차인지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말해봤자 소용도 없는 소리를 했다.

순식간에 눈이 쌓이고 ‘종례 마치면 바로 학생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란 말과 함께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왔다. 야자 감독이었던 교사는 쾌재를 불렀고, 퇴근 시간이 되자 다들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갔다.

2차 지필고사 편집을 담당한 나는 서둘러 칼퇴근하는 샘들의 뒷모습을 보며 옆자리에 앉은 동교과 샘과 다음 날 있을 교차 검토(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다른 학년 교과 샘들이 모여 다른 학년에서 낸 문제를 풀어보며 오류를 찾는 절차)에 맞추어 문제 수정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지나 밖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차에 쌓인 그 눈들을 어찌하나 걱정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더니, 과연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 실로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잠시 망연자실하다 정신을 차리고, 트렁크에서 장우산을 꺼내 팔이 닿지 않는 유리창의 눈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샘, 도와드릴까요?”
“나야 그렇게 해주면 좋겠지만, 괜찮아. 손 시리고, 너무 힘든 일이야. 니네 집에 일찍 가야잖아.”
“괜찮아요. 아까 샘들 퇴근하실 때도 저희가 유리창의 쌓인 눈 치워드렸더니 교감 샘이 수고했다고 음료수 주셨어요.” 라며 바로 달려들려 옷소매로 손을 덮고 팔로 앞유리창의 눈을 걷어낸다.

“샘, 용감하시네요”
“왜?”
“우산으로 눈 치우면 나중에 마르고 보면 차 다 긁혔을 텐데.”

혼자선 엄두도 안 나던 일이 세 학생이 도와주니 순식간에 앞 유리가 멀쩡해졌다.

“다 됐으니 가, 나머지는 혼자 할게.”
“그대로 가시면 지붕에 쌓인 눈이 앞창으로 떨어져서 위험할 걸요.” 라면서 목도리를 풀어서 둘이 양옆으로 잡더니 지붕의 눈을 한꺼번에 걷어주고는 교문을 빠져나간다.

‘오! 신이시여, 오늘 바보 이반에게 천사 세 명을 보내주셨군요. 전 이들을 위해 뭘 하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