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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44) 참으로 신기한 수능

나무와 들풀 2024. 12. 7. 10:23

지긋지긋한 수능이 끝났다.

수능 일주일 전부터 학교는 마치 전쟁터 같았다. 교실을 수능장으로 사용한다고 사물함과 책상 서랍의 물건을 다 뺐다. 서른 명이 넘는 학생이 생활하는 교실의 사물함과 책상 서랍에 물건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폐휴지와 쓰레기는 얼마나 많이 나왔겠는가? 이참에 교실을 싹 청소한다 생각하며 초긍정적으로 했다. 학년말에 자기 물건 가지고 가라면 절대 안 가지고 가는 학생들이 많아 결국에는 담임들이 그걸 치우느라 진땀을 빼기에 수능이라도 있어 다행이네 하며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참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학년을 올라가며 교실을 비울 때 자기 물건 가져가라고 하면 투덜대며 싫다고 하거나, “네” 해놓고 안 치우고 유유히 사라지는 학생들이 있는데, 수능장이라 치워야 한다고 하니 두말하지 않고 뺀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교실 대청소를 했다. 창틀과 유리창까지 닦았다. 주말에는 학교에서 각 교실의 사물함을 빼고, 청소 업체를 불러서 바닥을 청소하고 왁스까지 칠해서 교실과 복도가 반질반질해졌다. 이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올해 전입해 온 샘은 전 학교에서 바닥 물청소를 학생들과 했다고 한다.

중간중간에 영어 듣기 평가를 한다고 월요일 5교시, 목요일 1교시 하며 수업을 하는 교실에 영어 듣기 평가를 한 시간 내내 틀어놓는 날들 속에서 수행평가가 있는 경우는 도서실을 빌리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버텼다.

이번 주 수요일 또 대청소를 하고, 시험장을 꾸몄다. 지난주에 교실 게시물을 다 뗐고, 벽과 책상 위에 낙서를 지웠지만 다시 확인하고, 칠판에 안내 사항 붙이고, 책상 28개 배열하고 청테이프 붙이고, 멀티미디어 싸고, 남은 책상 복도에 내놓고, 크롬북 충전함 내놓고, 또 뭐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각 교실에 담임들이 대기하여 점검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수능 종사자들 연수를 받았다. 도 감독관은 내용 숙지가 다 안 됐는지, 파워포인트도 더듬거리며 읽고, 안내 책자에 있는 사항도 중언부언하며 2시간 동안 10분도 쉬지 않고 연수를 했다. 졸음을 참느라 허벅지에 멍이 들었다.

연수가 끝나자 교육청에서 점검하러 와서 다시 담임들은 교실에 대기해서 기다렸고, 아래층은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서 점검이 끝났다. 수능 전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것 같다고들 했다.

수능. 아침 7시 20분까지 오라 해서 주는 김밥 한 줄 먹으며 다시 주의 사항 듣고 감독을 했다. 발소리 내지 말고, 향수 뿌리지 말고,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아는 학생 있어도 아는 체 하지 말고, 말고의 연속.....

수능이 끝나고 아침에 출근하니 다시 내놓은 책상 들여놓고, 크롬북 충전함 들여놓고, 게시물 다시 걸고..... 접은 이불 다시 펴는 것 같은 일들을 했다. 출근하는 샘들은 수능 감독하느라 초죽음이었다며 수능 다음 날이야말로 교사를 위해 학교장 재량휴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 북새통 속에 나는 홀로 우리 반이 고사장이나 대기장, 휴게실이 아닌 그냥 빈 교실이었던 관계로 시험장 설치 수당 이 만원을 안 받았지만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다. 거기다 복도 감독관이었으나 날씨도 따뜻하여 추위에 동태가 되지도 않았고, 그냥 하루 종일 학생들 화장실 데려다주고, 금속탐지기 가동하고, 스마트폰 운반에 각 시험실에서 오는 약간의 요청을 전달하는 정도였으니 로또를 이중으로 맞은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