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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42) 교사연수는 만병통치약인가?

나무와 들풀 2024. 11. 8. 15:01

지난 금요일엔 학생부에서 메시지가 왔다. ‘송구스럽게도’ 뒤늦게 필수 연수 ‘한 가지 더’ 받으라고. 요즘 딥 페이크 디지털 성범죄와 서이초 교권 침해 사건 등으로 학생의 바른 인성이 중요해졌으니, 학생의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한 교사의 지도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업무로 바쁘겠지만 인성교육 연수 이수를 하고, 구글시트에 연수이수증 번호를 작성해 달라. 연수 시간은 ‘1시간’ 이상이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의 ‘송구스럽다’, ‘한 가지 더’, ‘1시간’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갑작스럽게 땜질 처방으로 연수를 받으라는 전언이 요즘 들어 너무 잦다. 업무 담당자의 고충도 충분히 공감한다.

갑작스런 땜질 처방이 교육계에 흔한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떤 일에 원인이 있어 처방을 했을 텐데 딥 페이크와 서이초 교권 침해를 한데 묶어 처방을 하는 건 참으로 의아하다. 딥 페이크 디지털 성범죄는 수사 결과 10대들이 70% 이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결과를 접했지만, 서이초 교권 침해는 가해자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였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을 묶어 교사의 인성 지도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면 학생을 넘어 학부모 인성까지 교사가 지도하라는 이야기인가?

이 심각한 일들이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게 학생부에서 협의한 결과를 담당자가 전체 교사에게 연수받으라는 내용으로 전달했을 리는 없고, 만약 그랬다면 정말 만세를 부를 일이지만, 교육청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편집해서 교사들에게 보냈을 것이다.

한창 딥 페이크 영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우리 학교에서도 연루자가 곧 나올 것이라 예상하며 그게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며 조바심을 냈다. 관련자들이 대부분 중, 고등학생이라고 언론에서는 매일 그래픽까지 그려가며 소상히 보도할 때마다 우리 학교에는 그런 학생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운 좋게도 없었는지, 아니면 들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북새통을 넘기면서 학교에서는 담임들이 조,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훈화를 하라고 했고, 교육용 게시물도 만들어 붙였다. 담임들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디지털 범죄는 장난이 아니라 아주 못된 범죄라고 사후 약방문을 했다.

사회가 정신없이 변해가니 교사가 도저히 학생들의 문화나 사고방식, 언어 관습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교사는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런 일들에 대응하며 학생들과 함께 소통하고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학교와 사회가 서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런 일을 하는 게 교육부, 교육청의 역할이 아닌가.

겨우 1시간 이상 원격으로 하는 인성 교육 연수를 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으로 딥 페이크 디지털 범죄나 서이초와 같은 교권 침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그들도 땜질 처방이라고 생각하겠지? 면피용 행정이라고 그들도 속으로는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1시간 이상 모니터 쳐다보는 시간에 학생을 쳐다보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인성 교육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청렴도 연수, 안보의식도 연수, 인성 교육도 연수...원격 연수 하나가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