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필고사 출제 기간이라 시험에 관련된 사항들을 안내하는 평가 담당 교사의 메시지를 거의 매일 한 통 이상은 받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지필 교사 관련이 아닌 고등학교 성취평가제 모니터링 체제 시범운영에 대한 교육청 공문을 안내받았다. 성취평가제 운영을 내실 있게 하고, 학생 개인별 성취 수준에 따라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 모니터링 체제를 시범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 이전에도 같은 담당자가 최소 성취기준 미도달 예방지도 및 보장지도 2학기 계획서를 내고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계획서를 만들고, 수행평가 계획을 확인하고, 지필고사 난이도를 고민하며 1학기 때 최소 성취 수준 미도달이었던 학생들을 만날 땐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종종 확인도 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엔 기초학력을 담당하는 교사가 기초학력 보장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 교사들에게 기초학력 미도달 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 기초학력 향상도를 보고해야 한다고 개별적으로 지도하라고 했다. 예방 지도가 대상 학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담당자는 예상 문제지가 있는 사이트를 교사들에게 알려주며 학생들에게 그 문제지들을 뽑아서 주고 풀고 오도록 하란다.
1학기에는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사들이 방과 후에 수업을 했고 1차 향상도 결과를 제출했다. 그런데 11월에 있는 2차 향상도 조사를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떤 조치도 취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가장 나쁜 방법이지만 예상 문제지를 주고 풀어오라고, 가까운 시일 안에 시험을 볼 거라고 하는 거 외엔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교사마다 가르치는 반의 학생들은 100명이 넘고, 이 학생들도 기초학력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기초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세국어를 학습하면서 훈민정음에서 없어진 자음을 말하는데 자음이 뭐냐고 묻는 학생도 있고, ㅎ종성체언을 말하는데 체언이 무엇인지 모르니 ㅎ종성체언까지 가기엔 너무 먼 학생도 다수다. 그나마 이 정도의 기초학력 부족은 수업 시간에 자음을 짚어주거나 체언을 다시 한번 설명하며 가르칠 수는 있으나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은 이 정도 수준과 비교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의 설명이나 하루 이틀 함께 공부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1학기에 함께 공부하면서 정말 큰 산이 앞을 막고 있는 답답함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들 학생들의 학력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교사에게 떠밀어 놓고 문제지나 배포하고 시험을 보라하고 향상도 결과를 받으면서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교육청은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교사들이 보기에도 될 것 같은 방법이나 대책을 내놓고 하라고 해야 학생들이 갖고 있는 고통을 곁에서 보는 교사들이 마음을 담아 움직일 것이 아닌가. 공문서로만 이것저것 떨어뜨리면서 계획서를 확인하겠다고 하고, 지도한 결과를 모아서 보내라고 하니 이젠 성취 수준 보장인지, 최소 성취 수준 미도달인지, 기초학력 미도달인지 도대체 뭐가 뭔지도 헷갈린다.
학생들도 그 학생이 그 학생이고, 이 과목에서 미도달인 학생이 저 과목에서 미도달이다 보니 여러 과목이나 분야에 걸린 학생은 그야말로 교사들이 돌아다니며 찾는 인기 스타라고 해야 하나. 그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은 자료와 시험지와 보충 수업을 이 교사, 저 교사와 함께 해야 하나. 공부 좀 못한다고 이래도 되는가. 이런 걸 아동학대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저하된 학력이 올라가고 그래서 다음 수업을 크게 어려움 없이 받은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미도달의 늪에 빠진 학생이 정말 공부를 싫어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미도달의 웅덩이에서 나오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을까. 답답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