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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8) 교사를 작업 반장 취급하는 디지털 교과서

나무와 들풀 2024. 9. 28. 09:52

얼마 전 '글로컬미래교육박람회'에서 초등학교 4학년 수학 수업을 시연한 동영상과 AI 디지털 교과서 홍보 영상을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봤다. 많은 사람이 반대를 심하게 해도 교육부가 부득부득 실행하는 디지털 교과서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수업 시연 영상을 운 좋게 본 것이다. 혼자 조용히 봐도 될 일이지만 굳이 초등학교 샘들과 함께 본 것은 뭐랄까 이런 핫한(?) 걸 혼자 볼 수는 없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보고 난 후 수업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도 필요했다. 영화 같은 경우도 그것이 좋든 나쁘든 혼자 보고 끝내는 것과 여럿이 같이 보고 느낌을 나누는 것은 본 것에 부여하는 의미의 층위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이 보고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

먼저 디지털 교과서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초등학교 영어를 대상으로 제작한 디지털 교과서 홍보 영상을 보았다. 겨우 6분 정도의 영상이었는데, 보고 난 샘들의 반응을 어떻게 여기다 글로 옮길 수 있을까? 그 짧은 영상, 더욱이 홍보 영상인데도 선생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학원에서 문제 풀이만 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혼자 집에서 가정학습으로나 하면 될 것을 왜 공교육 교실에서 해야 하나?”

“완전 주입식 교육이다. 영어 과목인 걸 감안해도 아이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 것인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인데, 학습에 소통과 협력이 없다. 학생들 사이의 소통이 완전히 거세되고 개인 활동만 있어 다수가 있어도 외로울 것이다.”

“말이 좋아 AI 보조교사이지, 애들은 챗봇 안 읽는다. 안 읽는 아이들에게 AI 보조교사라고 해봐야 그림의 떡이다. 교육부가 아이들 문해력이 낮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챗봇을 아이들이 읽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 아닌가?”

“교실을 공장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교사를 작업반장처럼 학생들 디지털 교과서 활동시키라고 수업 시간에 투입하는 꼴이다. 아이들이 영어 표현을 하면서 약간 틀린 표현이 있어도 교사는 그것을 알아듣고 응대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발판으로 시간을 갖고 스스로 수정하면서 배워가는데, 이건 틀리면 바로 틀렸다고 답할 것이고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좌절할 것이다. 그게 교육인가?”

어떻게 홍보용 동영상을 봤는데 이런 부분은 좋아서 좀 쓸만하다는 말은 없고 죄다 못 쓰겠다는 말뿐인가 싶었다. 그중 가장 내 마음에 울림을 준 말은 다음이다.

“애초에 디지털 교과서를 고안한 사람은 아이스크림형, 클릭형 교사를 상정한 것 같다. 그런 교사는 우리가 지향하는 교사가 아니다. 교사를 편의성으로 유혹하는데, 클릭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함에 휘둘릴 교사들,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것을 사용한다면 교사 전문성은 만들어지지 않고 클릭하는 교사만 남을 것이다. 클릭은 초등교육에서 아이스크림으로도 차고 넘친다.”

“이걸 만든 사람은 지식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상정한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교실에는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앉아 있다. 그런 학생들을 교실에 앉혀 놓고 이거 해, 하면 하겠는가?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다. 친구한테 배운다는 것이 빠져 있다. 영어를 도구로 하여 인간답게 성장하는 것, 배움을 만드는 것인데, 오직 영어 잘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그건 공교육이 아니다.”

아~! 이거 초등 4학년 소수 둘째 자리 뺄셈 수업 시연 동영상 분석은커녕 6분짜리 홍보용 동영상만으로 이런 감상이 나왔으니 교육부의 영상 제작 솜씨는 빼어나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