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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파커 J. 파머 / 한문화

나무와 들풀 2024. 10. 1. 12:24

파커 J. 파머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으로 교사들에게 친숙한 저자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같은 내용을 접해도 받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아마도 내가 하는 일에 버거움을 느끼며, 보이지 않는 짐을 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과도하게 얹었던 짐을 부리며 삶에 겸손해질 수 있었다. 지금 과도한 책임감에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서 작을지라도 위로가 되는 말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1장에서 저자는 남의 인생을 살려고 하거나 추상적인 규범에 의존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실패하게 마련이라고 충고한다.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16쪽)라는 구절에서 세상에서 요구하는 허울에 떠밀려 하루하루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은 소명이 아니라 폭력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저자는 ‘참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의 본성(참자아)을 거스를 때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가 징후로 나타난다고 한다.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 때 나오는 결과이다. 오직 내 안에서 자라지 않는 어떤 것을 주려 할 때, 그 행위는 나를 고갈시키며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 강요되고, 기계적이며, 실체가 없는 선물은 해악만 불러온다.’(90쪽)

내가 가진 것은 ‘참자아’에서 나오는 나의 본성이므로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새로 생겨나기에 베풀었을 때 비옥하고 풍요로울 수 있으나,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주려고 했을 때 나를 고갈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며 타인에게도 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길이 닫혔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우울증은 그때 나타나는 증상일 것이다. 이때 어떤 위로나 가르침, 조언이 그것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이 자기의 의식을 바꾸는 것만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문이 닫히면 방 안에 들어갈 수 없지만, 그것은 곧 그 공간을 제외한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 된다.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99쪽)

그런데 우리는 닫힌 방 앞에서 좌절하고, 우울해한다. 그러나 잠시 멈추고 나의 한계와 능력을 점검해 봐야 한다. ‘파이팅’, ‘뭐든 할 수 있어’ 따위의 말은 불가능이 주는 가르침을 외면하고 자기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우리의 내적인 내면에는 의식의 ‘아르키메데스의 지점’이 있다. 내적인 어떤 부분을 누르면 우리를 짓누르던 거대한 돌덩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된다.‘(138쪽)

결국 자기의 마음을 해방할 지점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해방할 수 있다. 이것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라 조화로운 곳이며 사람들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적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전쟁터라고 믿는 사람에게나 그런 것이다.

자연은 순환되는 계절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한결같은 교훈을 준다.

‘우리가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그것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아낌없이 써 버리라는 것이다. 지나친 손익 계산과 생산성, 시간과 활동의 능률성, 수단과 목적의 합리적인 관계, 적당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이르는 ‘최단코스’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결실을 맺기도 힘들고, 우리 인생에서 봄의 충만함을 누리기란 힘들 것이다.’(188쪽)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잠시 멈추어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 ‘참자아’를 따르는 길이며,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길이며, 내 삶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