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수업 공개 협의회가 있었다. 학교 일 중에서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나, 내 동료 교사는 그날 조퇴를 쓰겠다고 했을 만큼 스트레스 주는 일이었다.
2년 전 우리 학교에 왔을 때 수업 공개가 몹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았고, 일반계 고등학교의 보편적인 분위기인가 보다 생각하며 묻어갔다. 수업하며 궁금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은 다행히 혁신학교에 근무하다 우리 학교로 전근을 온 수학 선생님이 같은 학년 담임이라 그분과 서로 수업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함께 나누고 고민했다. 우리 학교의 지극히 형식적인 수업 공개와 협의회를 하며 이전 학교의 수업 공개와 연구회가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학교가 그런 감정을 길게 끌며 간직할 만큼 여유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면서 올해 수업 공개로 계획된 날짜를 다 뒤집어엎으며 교장, 교감이 참관할 수 있는 날짜들을 쭉 뽑아서 그날 중 하고 싶은 날로 다시 정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교장, 교감이 수업에 관심을 갖고 참관하겠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 이후의 지시가 이상했다. 공개하는 날 교실 뒷자리에 의자를 갖다 놓고, 지도안을 복사해서 놓으라고 했다.
수업을 공개하는 교사에게 케이크와 꽃다발을 선물하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경험했지만, 참관할 사람들이 앉을 의자와 볼 지도안을 복사해서 놓으라고 하는 건 10여 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수업 공개 협의회가 있던 날 조퇴하고 싶다던 내 동료 교사는 자신의 수업 공개일 날 1, 2교시가 연달아 있는데 하필 2교시가 수업 공개라 미처 의자와 지도안을 준비하지 못했고, 수업 내내 안 좋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교장 선생님이 신경 쓰여 공개가 끝난 뒤 지도안을 갖다 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에게 수업이 실망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쩌다 한번 듣는 소리였지만 수업을 공개하며 우스갯소리로, “장기를 기증하는 심정으로 수업을 공개한다”란 말을 들을 때 전체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는 되었으나 공감보다 의아함이 더 컸다. 장기기증은 죽을 때나 하는 일인데, 수업 공개하는 일을 죽는 것처럼 어렵게 여겨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공무수행 활동 중 가장 주된 일이 수업인데 그걸 더 잘해보려고 공개하고 참관하며 연구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죽는 심정으로 한다면 그런 일련의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다. 아무튼 죽는 듯이 장기기증을 하는 심정으로 하든, 살 듯이 하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수업을 공개하는 본질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도, 보는 이도, 참가하는 이도,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학교는 수업 공개 후 협의회를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해야 한다고 날짜를 2학기의 날들로 쭉 뽑아주며 고르라고 했다. 그 바쁘신 분들의 시간을 맞추려니 우리가 수업 공개를 1학기에 다 마쳐도 2학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 나왔다. 밥도 갓 지은 따끈한 밥이 맛있고, 살로 가는데, 떠 놓고 몇 달 지나 곰팡내 나는 밥이 제 구실을 하겠는가? 게다가 교장, 교감 일정에 맞추려고 수업 공개를 잡는 바람에 동 교과만 참관이 불가능해서 타 교과가 수업을 참관한 경우도 있는데 협의회는 동 교과만으로 하는 것이니, 내가 본 동 교과 교사의 수업이 1편이거나 2편 정도에 불과했다.
이 부실한 내용으로 무슨 협의회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 협의회에 앉아 있는 시간이 낭비로 느껴지고, 이걸 왜 하는가 하는 회의감만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나 같은 별거 아닌 교사가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 교사들은 의미 없는 시간을 허울뿐인 말 잔치를 하며 한 시간 가까이 견디며 협의회를 마쳤다.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이므로 12월쯤에 형식적이지만 대토론회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받는데 그때 수업 공개에 대한 의견을 써서 보내야겠다. 우리 학년 실 선생님들과 같이 의견 나누고 여럿이 같은 내용을 써서 내면 공개적으로 토론하기 전에 이미 해결되는 경우도 경험했고, 올해 문제점을 다들 느꼈을 테니 내년엔 나은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