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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간다 13 - 잉카의 과학 기술 (친체로, 모라이, 살리나스) (페루) 본문

여행

남미에 간다 13 - 잉카의 과학 기술 (친체로, 모라이, 살리나스) (페루)

나무와 들풀 2016. 3. 24. 15:28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잉카제국의 과학 기술 모라이와 인디오 마을 친체로, 소금 논 살리나스>

아침 비가 살짝 비쳤지만 버스를 탔더니 이내 그쳤다. 이번 여행은 우연히 버스를 타면 비가 내리고, 우리가 내리면 비가 그친다. 그 덕분에 남미가 우기라 하지만 우기인지를 잘 모르겠다.
버스를 탄 우리는 친체로로 향했다.
친체로는 잉카의 마을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인디오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성전터가 있는데, 현재 복원 중에 있다. 주변에는 계단식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 페루의 주식은 감자인데 1000여 종의 감자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면 언제나 주 음식 옆에 감자가 따라나온다.
친체로에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의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다. 여러 벽화가 있었지만 촬영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침략 앞에는 종교가 먼저 온다. 종교을 이유로 침략을 정당화한다. 페루의 교회에서 보이는 십자가는 옷이 입혀져 있다. 토속 신앙과 카톨릭이 합쳐진 결과라 봐야 한다.
쿠스코에서는 커다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대성당의 예수상이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지금은 1년에 한 번 예수상과 마리아 상이 나와 아르마스 광장에서 만나는 행사가 치루어진다고 한다.
친체로 마을은 비교적 인디오들의 생활이 잘 보존된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좋은 손재주로 물건을 만들어 판다. 우리가 친체로를 올라갈 때도 길가에 수공예품을 가는 가게가 죽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친체로 입구에서 인디오 할머니가 파는 삶은 옥수수를 3솔을 주고 사먹었는데, 옥수수와 수제 치즈를 함께 주었다. 수제 치즈의 맛이 참 근사했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친체로를 본 우리는 모라이로 갔다. 친체로에서 모라이까지는 40분 정도 버스로 이동을 한다. 모라이는 잉카인들의 농경 경작 실험지인데, 잉카의 계단식 농경지가 거대한 동심원으로 수십 개가 위로 설치된 형태이다. 잉카인들은 이 모라이에 각각 다른 농작물을 심어서 고도에 따라 경작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 고도에 맞는 농작물을 경작했다고 한다. 잉카인들이 특히 잘 한 것은 수로인데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수로를 만들어서 골고루 각각의 계단으로 스며들면서 농작물에 물을 주게 설계한 것이다. 이것은 어디가나 볼 수 있다. 전날 쿠스코에서 보았던 황금 신전에서도 수로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물이 흘러온 것을 모아 다시 양편으로 똑같은 양을 수로를 통해 흘러보냈다고 하니 잉카인들의 과학 기술은 뛰어났을 것이다.
모라이 역시 동심원 같은 밭의 가운데에 엄청난 기가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거기까지 내려가지 못 했다. 내려다본 모라이에는 외국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모라이에서 다시 우리 일행은 살리나스로 향했다. 살리나스는 거대한 산을 일차선의 좁은 도로로 40분 정도 달리면 황토색 밭과 같은 사각형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산 속의 염전이다. 바다가 아닌 산에 염전이 있겠나 하겠지만, 옛날 살리나스가 있던 곳은 바다 속에 있었는데 지각 변동으로 융기해서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산 속에 염분이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산이 품고 있는 염분이 녹아 흘러나오는데 맛을 보니 너무 짜서 쓴 맛이 다 났다. 살리나스는 잉카 시대에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규모의 1/3 정도에 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후손들이 계속 산을 개간하여 지금의 거대한 염전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개간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개간이라고 하면 크게 생각하겠지만, 옆에 땅을 돌로 막고 거기에 물이 머물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우기라 사람들이 쉬고 있지만, 건기에는 서너 시간이면 한 칸에서 200키로의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여기에서 나오는 소금의 질은 우수해서 대부분 일본 등지로 수출이 되고 일부가 이 지역 사람들이 소비한다.
살리나스나 모라이는 거대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마츄픽츄도 마찬가지다. 거대하다는 것은 수만 평의 땅, 이렇게 상상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살리나스를 보았을 때 황도색 바둑판이 밑에 마을 서너 개 정도의 크기로 이어져 있다고 하면 될 것이다.
살리나스에서 다시 버스 타고 30분 정도를 지나 우리는 다시 쿠스코로 왔다. 모두들 여행이 일주일을 넘기며 음식과 고산증에 시달리고 있어 우리의 가이드인 루피가 쿠스코의 한식당인 사랑채를 예약 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중국을 여행하면서 한국 음식점에 대한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사랑채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산과 긴 이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채는 그 동안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의 한식당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들어가니 안주인이 따뜻한 옆차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식당에서도 물을 사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 식당 안주인이 따뜻한 옆차를 내놓자 일행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반찬들, 김치와 부로컬리계란전, 오이지 무침, 시금치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고산 지역에 게다가 한국과 반대인 곳에 한국의 맛과 똑같은 맛이 있다니! 접시에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우린 싹 다 비웠다. 그리고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으며 다음날부터 이어지는 일정에 힘을 얻고 뿌노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참, 쿠스코에서 참이슬은 한 병에 15000원 정도이다.

< 친체로 마을>



< 모라이>


< 살리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