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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앤C 캘러 지음, 정찬형 옮김, 역사비평사 본문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앤C 캘러 지음, 정찬형 옮김, 역사비평사
한나 아렌트의 삶을 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1~1963, 2. 아버지의 죽음 쾨니히스베르크 1906~1923, 3. 첫사랑 마르부르크의 하이데거 1924~1932, 4. 우리 망명자들 1930년대 베를린과 파리, 5. 안전과 명성 『전체주의의 기원』과 뉴욕의 지식인 사회 1941~1961, 6. 아이히만 이후 뉴욕 1963~1975의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 부분도 다시 나누어 보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을 즈음과 쓰기 전, 쓴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아렌트가 유명해진 것은 『전체주의의 기원』을 쓰면서였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가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런 저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저술한 책에 표현된 그의 위대한 통찰은 나치의 수용소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한 실험실”이었으며, 이를 통해 인간 정신에 대한 “총체적 지배”가 가증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밝힌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되어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인싸와 아렌트는 역설 속에 담긴 의미처럼 각각 단어가 맞부딪히며 튕겨 나오는 의미를 음미할 때 비로소 아렌트의 행위와 사유가 와 닿는다. 생각과 실천에 있어 깊이와 단호함은 우리 사회의 이성을 끌고 나가며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을 때 정작 본인은 그 속을 날카로운 칼날로 헤집고 나오는 강렬함에 있다.
유대인 박해 이후 아렌트의 어려움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시작된 것 같다. 유대인이 유대인 사회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히고 미국으로 떠난 후에도 그 의혹과 미움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평생 의심을 받고 살아야 했으나 그는 꺾이지 않았다.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아이히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각이 없었다.”(즉, 어떤 문제나 사건을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그의 삶은 깊이가 없었다.
“오로지 열심히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아이히만에게 삶의 다른 동기는 일절 없었다.” “나는 단지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유명한 말(이후 사람들에 의해 전체주의적 환경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 말)을 남김으로써 자기 책임을 나치라는 전체주의에 돌렸다.
아이히만의 이런 발언은 사유 없음의 전형적 예이며, 이것을 “악은 표면적 현상이다.”라고 표현하여 아이히만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 즉 사회적으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외롭게 표류하며 경제적으로는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인 허무주의와 전체주의의 표적이 되기 쉬운 특성을 지닌 후기 산업주의 사회 특유의 반마르크스주의적 인간 유형을 말하려 한 것이었다.
(당시)‘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밀그램의 실험 결과(이것에 대해서는 이후에 발간된 책에서 조작된 실험이라는 주장과 근거가 있다.)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겼다. 사람들이 모두 내면에 작은 아이히만을 갖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이런 진실을 담고 있었기에 아이히만의 재판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던 유대인 사회에서 배척되었을 것이다.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하이데거가 그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 그는 “피와 토양” 위에 만들어진 “민족과 민족 국가”의 위험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저술 활동으로 표현한 정치철학자였다. 가장 어둡고 위험했던 시대에 과감하게 이방인의 자세로 살아가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인간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인 ‘탄생성’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런 엄청난 가능성이 완전히 구현될 때 ‘세상을 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18쪽)
사유는 고독 속에서만 형태를 갖추는 것이긴 하지만, 그때의 고독은 혼자만의 고독이 아님이 틀림없다. 먼저, 누구나 반드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해야 하고 자신과의 합의에 도달해야만 한다. 아이히만이 하지 못한 게 바로 이것, 사유다.
가장 어둡고 위험한 이 시대, 모두에게 사유가 필요한 이때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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