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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시, 고은, 창비

나무와 들풀 2016. 6. 17. 09:12


 

고은, 두고 온 시, 창작과 비평사, 5000원

 

 

광장 이후

 

지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광장의 이데올로기는 끝났다

흩어진 지 오래

그해 120만명의 사람 하나하나는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흩어진 지 오래

저마다 돌아가

혼자인 누에집에 들어가 있다

 

사랑하는 싸이버 속에 들어가버렸다

 

어느날 밤

누군가가 뛰쳐나와 소리쳤다

 

아 독재가 있어야겠다

쿠데타가 있어야겠다

 

그래야

우리 무덤 속 백골등

분노의 동정(童貞)으로 뛰쳐나오리라

하루 열두번의 잠 때려치우고 누에집 뛰쳐나오리라

그래야 텅 빈 광장에 밀물의 짐승들 차오르리라

 

지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도 미쳐버리지 않는데

가랑비가 내리고 차들이 가다가 막혀 있다

그러나 옛 친구들 기억하라

이 광장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언제나

 

 

 

 

독재가 있고, 그들의 쿠데타도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다. 다시 광장으로 나가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