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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서경석 저, 돌베개 본문

고뇌의 원근법, 서경석 저, 돌베개

나무와 들풀 2016. 6. 18. 11:40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저, 돌베개, 16000원

 

 

 91년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아주 친했던 미술 교사가 있었다. 당시 불법이던 전교조 교사였고 아이들을 몹시 사랑했다. 목소리는 가늘고 예뻤으며,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맥주를 좋아했고, 아이들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철저한 이론적 바탕이 없이 감정적으로 교육 운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녀의 마음이 좋았고 친절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그녀는 종종 미술실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실크 염색이 그녀의 전공이었다. 파라핀을 불에 녹여 실크에 입히고, 염료를 칠하고 파라핀을 떼어내고 말리면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는데, 항상 그녀의 그림은 몽환적인 보라빛 색채에 예쁜 나비들이 날고 있었다.

 그녀가 전교조 교사가 아니라면 그녀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비합법 시절 전교조 교사였다. 그리고 당시 우리가 교사로 근무했던 지역은 연천이었으며, 그곳은 대포 사격 연습 소리로 태양이 떠 있는 기간엔 2분 정도에 한 번씩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렸던 곳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암울했으며, 학교는 권위와 독재로 멍들대로 멍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다방 아가씨와 새파란 젊은 군인이 다방에서 히히덕거리다 근처 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늘상 보고 살았으며, 이따금씩 팀스피리트 훈련을 할 땐 얼굴에 얼룩 그림을 그린 미군이 장갑차와 탱크를 몰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등굣길에서 보곤 하였다. 또한, 불발탄을 장난하던 애가 폭탄이 터져 영영 얼굴을 볼 수 없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탱크를 몰던 군인이 깜빡 조는 바람에 집을 깔고 지나가 주무시던 부모님들이 다 죽고 애만 천우신조로 살아남았다는 끔찍한 일들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우리가 모여서 소주라도 한 잔 하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 직원 조회 시간에 교감이 일어나 모이지 말라고 한 소리하던 그런 시절에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이 이렇게 암울한데 어떻게 그림은 이리도 환상적이고 예쁘기만 할까?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기라도 하듯 그녀는 "나는 예쁜 그림이 좋아. 현실이 아파도 그림은 예쁜 게 좋아."하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오랫동안 전교조 활동을 하지 않으리란 슬픈 예감을 했다. 첫발령 받은 내게 전교조를 권했던 그녀지만 먼저 떠나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 그녀는 지금 전교조일까? 그녀의 그림은 여전히 아름다울까?

 슬프지만, 그녀의 그림이 아직도 아름답기만 하다면,  미술 교사로서는 반쪽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그림이 떠올랐고, 왜 내게 그녀의 그림이 15년도 더 지난 시간 동안에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 그녀를 끔찍히 아꼈나 보다.

 

 동독의 미술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훌륭했다. 아름답지 않지만 현실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예술, 밥 벌이를 위한 예술이지만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예술, 그래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민중미술이 있었지만, 동독의 미술에 비하면 그림의 양적인 면이나 화가의 숫자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림을 그리는 실력과 섬세함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적으로 열세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오토 딕스의 그림, 고야의 그림, 펠릭스 누스바움의 그림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고야는 우리 미술 책에도 나오는 화가인데 그가 그린 그림을 제대로 미술 시간에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고흐가 자본주의 속에서 그림으로 밥 먹기 위해 처절하게 그림을 그렸다는 것도.

 

 거실을 장식하고, 투기하기 위한 우리 나라의 그림과, 미술가가 그린 그림을 미술관에서 사서 전시하는 독일의 미술이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뭐냐? 4대강 삽질? 아, 정말 삽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