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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역, 서현사, 2013 본문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3
머리말
“왜 심리학에 의문을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심리학이 약한 입장(아이, 내담자, 피험자, 장애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은연 중에 관리하고, 때로는 그들을 묶어두는 정교한 새 그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각하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자기책임’이라는 냉혹한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만, 임상심리학은 그 냉혹함이 낳은 사람들의 불만을 진정시켜, 자기내면으로 관심을 향하게 함으로써 문제를 개인이 떠맡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제 1부 교육심리학의 재고
1장 발달에서 생명의 변화로
발달이라는 구조화된 개념의 확립과 우리 사회로의 침투는 어린 아이를 억압하고 어른들도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관으로 묶어둔다. 그것은 아이를 보는 심리학과 의학이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에 ‘발달지수’라는 수치를 사용해서 값 매김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각각의 다양한 삶을 ‘발달’이라는 ‘척도’가 끊임없이 값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합/불합격, 적응/부적응, 정/부정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열과 경쟁이 우리 의식에 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제 할당된 목표를 향해 발달을 강요당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서로 받아들여주면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싸워나가야 하지 않은가?
2장 학습이라는 이름의 상실
학교의 배움은 기호적 추상적인 숫자와 문자의 세계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라는 삶의 세계를 빨리 버릴수록 성취가 높아진다. 배움의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다. 그래서 동기심리학이 등장하였다. 내발적 동기이론과 외재적 동기이론. 외재적 동기이론(상벌을 주거나 경쟁을 시켜서 동기를 갖게 하는 눈에 보이는 방법, 이 방법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억압이라고 평가받고 있음) 내발적 동기이론이라고 하는 것도 기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배운다는 것은 원래 타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다. ‘뭔대?, 왜?, 보여줘, 하게 해줘’ 그런 것이 배움의 원점이다. 아이들이 학교공부를 거부하는 현재, “어떻게 잘 가르칠까?”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칠까?”로 물음을 바꿔야 한다.
3장 지능과 학교교육
공교육의 여정 속에서 성공하는 것은 올바른 지능을 몸에 익혔다는 증명을 얻는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지능을 익히기 위해 아이들은 놀이를 잃고, 집안일 돕기도 제외되면서 공부가 아이의 세계를 다 뒤덮고 생활 비중도 학교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 그리고 학교는 아이의 서열화를 공인하는 사회적인 장으로서 공공연히 선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교육의 알맹이는 언제나 국가의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교육의 중립이라는 말은 환상이다. ‘인공위성이 날면 아이들이 학원으로 달린다’라는 도식은 국가와 교육의 관계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충분한 시간과 다양한 우연성을 품은 과정이 아이에게 진정한 지혜를 가져다주는 조건이다. 현대는 지식과 생활이 분리되고 두뇌와 신체의 괴리가 진행되었다. (이 괴리를 진행하는 곳이 학교다.) (수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능력이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들은 자신이 둘러싼 구체적인 사물과 자기 자신의 신체, 자신의 생활 자체를 잃고, 추상의 세계, 관념의 영역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높다는 것이다. 수동형이 될 수 있는 능력이 높은 것이다. 학교에서 우등생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외부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지식과 과제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것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적응적, 수동적이다. ‘종속적 능동성’이다. 이제 여기에서 출발한 현대의 기계 문명에 대한 물음을 해야한다.
4장 심리테스트의 실상
심리테스트가 비밀인 것은 그것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을 크게 바라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리테스트의 시작은 ‘우생학적’ 혹은‘선별적인’ 성격을 갖고 출발하였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고 열등한 측면을 발견하고 선별하는 방법이다 도구 자체가 깊숙이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객관적이지도 않고, 독점적 사용으로 위험하며(약자에게), 상대방을 엿보는 불쾌한 행위이다.
5장 상담이라는 이름의 관리
현대인들은 너무 바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이른바 듣는 힘을 잃어버린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상담은 어떤 의미에서 이른바 잘 들어 주는 기법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상담이 과학적이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중립적이며 인간적인 관계라는 생각은 환사이다 상대방을 부드럽게 붙잡아 묶어둔다는 의미에서 한층 더 상대하기 벅찬 무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상담은 상담자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말하면 상담자가 가진 문제설정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상긍정을 위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사상과 과학은 생명체에 있어 시간의 의미, 천천히 하나씩 쌓아 올라가는 시간의 큰 의미를 빼앗아 버렸다.
6장 등교거부 – 아이들의 문화혁명
등교거부는 병이 아니다. 학교라는 사회장치와 의식 때문에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 억압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학교로부터 기인하는 고통을 너무 많이 참아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신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른의 경우 이런 고통은 일에 대한 중압의 대가로 수입을 얻고, 그 일과 직장이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전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보수를 얻는 것도 아니며,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없다. 과거의 학교는 읽기 쓰기 즉 언어체계를 익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현대는 그렇지 않다. 또한 읽기 쓰기 공부는 과거처럼 생활필수품으로 익히는 학습이 아니라 거의 시험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포스트만은 미디어의 출현으로 아동기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이동기를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껍데기만 남은 기관이 아닐까? 아이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욕망, 다양한 교칙, 규제, 성적지상주의에 의한 서열화와 경쟁, 성적과 성격 테스트, 생활 평가 등이 학교당국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에 의해서도 지지되고 있는 어른에 의한 아이 지배에 대한 집착이지 않을까? 아이는 부모의 로봇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로 취급되며, ‘모든 국민은’이라는 항목에 포함되는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단지 보호되는 것이다. 이제 ‘아이보호’주의를 ‘아이차별’의 시점으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등교거부는 아이를 한 인간으로 봐달라는 호소다. 학교가 하는 관리된 집단활동은 아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느끼고 있다. 불신의 원류는 아이를 자유롭게 놔두면 큰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이다. ‘잘 참고, 순진하고, 아이다운’ 아이는 힘을 가진 어른에게 종속되는 아이의 이미지다. 역사적으로 제멋대로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인 여자에게도 언제나 던져진 비난이었다. 여기에 저항하며 여성들도 한 명의 인간임을 인정받았다. 여성, 아이들이 지금 이 사태에 다시 함께 맞서는 것이야말로 학교문화에 대한 아이의 문화혁명을 진행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언젠가 결실을 거둘 날이 올 것임에 틀림없다.
7장 부모-아이 관계론으로부터의 해방
‘ 이것이 정답이다’와 같은 아이키우기 강요는 경쟁과 분단, 배제를 낳는다. 이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다른 배제를 낳는 구도가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다. 심리학이 상품화 되면서 심리가 조작되는 또 다른 억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좀더 신중하고 엄밀하게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부모교육훈련도 문제의 바꿔치기처럼 부모-아이의 권력 관계가 느껴진다.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교묘하게 아이를 지배하려는 사상과 기법이 아닌가 한다. 부모와 아이는 생활 속에서 폐쇄된 관계를 열어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자유로운 해방과 진정한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2부 서로를 배우는 일상으로부터
제1장 대학생들과 함께 걷기
듣는 측의 의지를 무시하고 강제로 듣게 하는 제도적인 장이 하나 있다. 그것이 초, 중학교와 고등학교다.
제2장 여행 떠나기 : 부모-아이에서 부모-아이들로
1950년대 이후 공업화 사회, 정보화사회가 만들어내고 유지시키고 있는 ‘전업주부’라는 지위는 여성들로부터 생산력을 빼앗고 좁은 주거공간에 엄마와 아이를 가둔 주범이다. 전업주부가 해야하는 일은 본래 불필요한 일이었다. 타인을 돌보는 것은 당사자가 할 마음만 있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아이는 자연환경과 친구만 있으면 손이 별로 가지 않고 스스로 자라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른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래(등가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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