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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지음 본문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지음, 메멘토, 2014, 13,000원
한국어판 서문(우치다 다츠루)
하위문화에 깊은 애착을 느끼고 특정 분야(영화, 만화, 음악 기타)에 대해 별로 쓸모가 없는 사소한 지식을 대량으로 축적한 사람을 ‘오타구’라 부릅니다. 오카다는 오타킹입니다.
나는 개풍관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교류합니다. ‘의사 가족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수익을 확보하려는 아베 정권의 행태를 보면 이런 식의 ‘자위조직’을 형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위적인 공동체 조직의 기본원리는 ‘증여’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는 ‘증여 한 방’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등가로 교환하는 상거래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인들(부모나 스승)로부터 다양한 지식이나 기술, 보호를 증여받아왔고, 그 덕분에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것을 자원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 혼자만 챙겨 쌓아놓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패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머리말(오카다)
우치다 선생은 “사람에게는 올바른 상태, ‘원시의 상대’가 있다. 근대에는 그러한 직관력이 약해지므로 그 감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원시의 상태’는 신체성입니다. 신체성이야말로 자아를 형성하는 전체이자 토대이며 끝까지 도망갈 수 없는 그릇(도구)입니다. 반면, 나는 인간의 신체성에 그다지 무게중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람은 변화한다, 그리고 결코 원래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가 나이 기본 생각입니다. 그러나 ‘증여경제’와 ‘평가경제’는 생각이 같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대담집입니다.
1장 정어리처럼 되어가는 사회
오카다 : 우치다 선생님은 ‘미들미디어’라고 인터넷 환경이 성숙하면서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 사람들이 작은 단위를 통해 먹고사는 구조가 쉽게 만들어졌다 하셨는데 그런 흐름의 가속화 속에서 매스미디어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치다 : 매스미디어는 정보의 질을 따지기 이전에 ‘정보의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의 커다란 안정 요인이 된다고 봅니다. 매스미디어가 없어지면 대화의 공통 기반이 사라져버립니다. 아무리 의견이 대립해도 논의가 성립한다는 것은 참가자들이 원리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논리를 구사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카다 : 지금의 사회는 ‘정어리 떼’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요. 가치의 중심이 없는. 공통의 텍스트 같은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예요.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통상적인 도량형이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양이란 것이 성립하지 않아요. 무리를 지어 기분 좋게 헤엄을 치고 싶어 한다고나 할까요.
오카다 :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업계에서는 최근에 “이제 못해먹겠어요”하며 그만두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어요. 연애에서도. ‘기분 지상주의’라고도 하는데요, 벽에 부딪히면 기분이 먼저 스러져버려요. 벽을 향해 화를 내기보다 여차하면 결국 ‘못해먹겠다’고 손을 터는 거죠, “마음이 사라졌어…” 이렇게요. 그들은 선량하게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는데 그들이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처럼 마음가짐이 고전적인 모델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요즘 애들은 어른한테 세뇌를 받아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신화를 진짜 믿고 있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인지할수록 무섭고 괴로워서 상태가 나빠져요. 그래서인지 기분지상주의가 되어버리죠. ‘어린아이 같은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정답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우치다 : 몸이 약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입력에 반응이 빠릅니다. 신체는 타성에 강하거든요. 그래서 신체가 중심이 되면 ‘마음이 부러질지도 몰라’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유연하게 진로를 바꿉니다.
오카다 : 남자애들은 ‘참아라’하는 식의 신체성을 무시하도록 교육을 받으니까요. 철저하게 신체성을 무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남자의 초식화, 욕망의 꼬리 감추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지금 인터넷 사회는 모든 게 기록되기에 우리는 실패를 잊어버릴 수 있는 세대인 반면, 그들은 완전기록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예요. 그들은 실패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커요.
2장 노력과 보수에 대해
우치다 : 노력과 대가의 상관관계는 단지 이상일 뿐이예요. 딱 잘라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노력과 대가는 원리적으로 관계가 없어요.
오카다 : ‘보수는 운’이라는 걸 이해해야 해요. 운이기 때문에 성공하면 다른 사람한테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운을 혼자서 독차지하는 도둑고양이겠지요.
우치다 : “노력하면 결국 보람이 찾아온다”는 말 정도는 해도 좋겠지요. ‘보상’은 어떤 노력을 하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주어지는 법이거든요. 그건 정말 뜻밖의 것이지 노력의 양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예요. 대가를 바라는 사람은 ‘노력한 사람은 언젠가 꼭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대가가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교환 행위의 인류학적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믿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다음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일수록 귀 따갑게 동시교환, 등가교환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3장 확장형 가족
오카다 : 원래 일본은 이렇게 힘들게 일을 안 해도 되는 사회였는데, 일을 안 하면 안 되는 사회로 바뀌어버렸어요. 경제적 번영은 개개인의 강제적인 노동 참가=빈곤화의 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우치다 : 증여한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행위입니다. 애당초 그것은 자기 힘으로 이룬 게 아니거든요. 어릴 적에는 부모 손을 빌렸고, 친구, 상사, 동료, 스승 등 여러 사람의 뒷받침과 도움이 있었으니까 오늘날의 자기가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은혜를 은혜로 갚지 않으면 안 돼죠.
우치다 : 오카다 선생의 FREEex나 나의 개풍관이나 상호부조의 호혜적인 집단입니다. 이런 집단은 규모의 한계가 있습니다. 친족을 해체하고 지역공동체를 해체하고, 종신고용 기업 같은 중간 공동체도 해체하여 모두 고독해진 것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풍요롭고 안전해졌기 때문이예요. 개인의 ‘원자화’는 평화와 번영의 대가라고 볼 수 있어요.
오카다 :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 살아가는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도, 어째서 가족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은 채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을까요?
우치다 : 가족제도의 기본은 신체성이예요. 그래서 기술의 진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4장 신체가 기본인 인간관계
오카다 : 요즘 젊은이들은 욕망이 없으니까 반응밖에 할 게 없어요. 그들이 행동하게 하려면 결국 신체성을 되찾는 것, 그래서 욕망을 자각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치다 : 청소를 해야지요. 청소를 해보면 인간이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지요. “에잇, 이게 뭐야.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라는 깨달음 말이지요. 그제야 비로소 의미 없어 보이는 것 안에 의미가 없음을, 허무하게 변해버리는 것 안에 생명의 본질이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 어떤 곳에서도 사제관계는 성립해요. 그것이 순수하게 기능이라는 점을 알면 말이지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 교육 콘텐츠를 교사가 학생에게 제공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여기는 근대적인 환상이 끼어들어 왔어요. 교육에서는 스승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때까지 자신 안에 꽁꽁 묶여 있던 ‘앎의 한계’를 시원하게 부숴버리고 밖으로 훌쩍 뛰어나가는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해요. 결국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 아이가 스스로 배우는 시스템을 발견해서 끝없는 성숙의 과정 안에 자신을 풀어놓느냐…, 이것뿐이니까요.
5장 증여경제, 평가경제
우치다 : 경제활동의 기본원리 자체가 ‘증여와 반대급부’거든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경제활동의 주체라고 생각하면 증여의 의미도 알 수가 없겠죠. 증여를 하는 쪽에 서봐야 비로소 증여의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옛날의 침묵 교역이라는 것도, 부족과 부족의 경계선상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은 내게 보낸 선물이구나…’하고 생각한 사람이 출발점이 되었어요.
오카다 : 인터넷에 의한 상거래의 고속화, 무시간 모델이라는 사고 방식이 화폐경제를 파괴하기 시작했어요.
우치다 : 인터넷은 근대적 자본주의를 파괴시키는 트로이의 목마였구만요.
오카다 : 대학들은 입학설명회에서 취업률이 얼마나 좋은지를 내세워 학생을 모집하고 있어요. 결국 취업 지도 말고는 없다는 이야기죠. 사회인은 기술, 관계망, 인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여경제가 만약 부활한다면 마지막에는 인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라는 인지가 꼭 필요하겠지요.
우치다 : 쿨라 교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에요. 신용카드를 도입함으로써 신용의 본래적인 내용, 그러니까 인간 사회의 개념이 품은 알맹이가 없어져버렸어요. 비즈니스를 할 때도 그 사람에게 공민성, 신의, 의리, 증여에 대한 반대급부의 의무를 자각하는지 그런 것들을 배려하는 환경을 얼마나 재구축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오카다 : 저는 ‘평가경제’라 불러요.
우치다 : 그런데 가장 질이 좋은 증여란, 이런 식으로 본인도 모르고 주위 사람도 모르지만 모두 그 덕에 구제를 받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6장 몰락을 준비하다
우치다 : 올바른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에게는 이미 패배가 기다리고 있어요. “말할 필요 없이 이쪽을 선택해야 해”라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고, 그럴 때 ‘결단’이라는 의식은 개입하지 않아요. 교육은 비효율적이지만 비효율적이지 않으면 다양한 재능을 찾아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이념을 내세우는 학교가 다양한 학부나 학과 및 교육 프로그램을 구비할 필요가 있어요. 교육은 교사가 가르치려한 것과 다른 것, 학생이 배우려고 한 것과 다른 것을 배우는 장입니다. 교사는 학생들 안에 숨어 있는 지적인 잠재 자원에 대해 경의를 표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런 자세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으면 배움은 성립할 수 없어요. ‘가르치는 쪽’이 ‘가르침을 받는 쪽’의 잠재적인 지적 능력에 대해 경의를 품지 않으면 지성은 깨어나지 않아요. 학교 교육의 필요조건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어른들에게는 젊은이의 성장을 인내성 있게 기다리는 자세가 없어요. 인내와 경의, 그게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이죠. 요 20년 사이에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외형적이고 수치적인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게 된 점이 아닐까요? 젊은이들이 답답하고 비관적으로 느끼는 까닭은 글자 그대로 ‘갇혀 있다’는 신체 감각 때문이 아닐까 해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세상, 학력이나 자격이나 면허증, 토익 점수 같은 외형적인 정보로만 알맹이를 재보려고 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 말할 수 없이 신체적인 불쾌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해요.
7장 연애와 결혼
우치다 : 만남을 통해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반쪽을 찾아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는 이미 현실적이지 않아요. 결혼의 의미 중에 절반 이상이 ‘안전 보장’이 아닌가요? 연애 감정보다 신뢰와 신의를 바탕으로 결혼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연애 지상주의는 배부르고 안전한 사회에서만 존립 가능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배도 고프고 안전하지도 않은 사회에서는 상대의 성적 매력보다 사회성을 중시해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나 센스 같은 것보다 시민적인 성숙을 조건으로 꼽는 시대가 곧 오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빌리고 빌려주는 비균형 속에서 남편과 아내가 각기 상대에게 증여하고, 반대급부의 의무를 통해 상쇄하는 끊임없는 운동이 계속되어야 부부의 균형이 유지됩니다. 인간 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제도의 조건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높은 수준의 인간적 일치가 이루어져야 결혼할 수 있다면, 인류는 애저녁에 멸종했을 거예요.
대담을 마치며
오카다 : 왜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재미가 없는가? 그건 누구를 향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화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해요.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 ‘허공에 대고 하는 이야기’…. 교장선생님은 줄곧 허공에 대고 말씀하시니까요.
맺음말
우리 사회가 지금 ‘새로운 공동체’를 탐색하는 일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거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그런 단순한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통렬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정말로 필요한 것’,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예를 들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내팽개치지 않는 동료)은 돈으로 살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치다 타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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