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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 담임이 뭐 이래요? 본문
장곡 타임즈의 칼럼에 낸 글이다.
담임이 뭐 이래요?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박현숙
내가 자랄 땐 만우절은 학교에서 커다란 이벤트가 속출하는 날이다. 평소에는 고분고분 선생님 말 잘 듣던 아이들도 이날만은 선생님을 대상으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골탕을 먹이곤 했다. 선생님이 싫어서는 아니었고, 감옥처럼 똑같은 복장과 엄격한 규율 속에서 순종만을 강요하는 교육 제도에 대한 사춘기 시절의 힘없는 항거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도 그날만큼은 우리들의 깜찍한 일탈을 용서했다. 어쩌면 이런 일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광주학생운동과 같은 거대한 ‘학교개혁운동’이 학생들 손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틈새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고 또 분출하면서 답답한 학교를 버텨냈던 것 같다.
세상이 변해도 학교의 시계는 여전해서 만우절날 하는 장난이 내가 교사가 되어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반을 서로 바꾸거나, 책상의 방향을 뒤로 돌려놓거나, 반의 팻말을 다른 반과 바꿔놓거나 하는 고전적인 장난은 변함없이 반복되었다.
오래 전 만우절날의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 3교시 국어 수업을 하러 갔더니 역시 만우절답게 아이들이 교실에 하나도 없었다. 어디 갔을까 하고 밖을 바라보니 정신없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청춘의 피가 끓는 중학교 3학년. 고입 시험 때문에 하루 종일 교실에서 좁은 책상과 의자에서 공부만 하려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만우절을 핑계로 국어시간에 축구를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이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있었다. 내려가서 빨리 올라오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더 놀게 두고 싶었다. 한 시간 국어 공부보다 한 시간 축구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까지였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가 ‘철들 때’라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지들의 담임이 철없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역공을 할까 생각하다가 아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생각났다. 가방을 하나씩 뒤져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급식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왔다. 한 명의 도시락만 먹으면 안 되기에 도시락을 열고선 한 숟가락만 먹었다. 밥 한 숟가락이 없어지는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도시락과 함께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먹고 뚜껑을 덮어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시락을 의기양양하며 까먹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악!” 소리와 함께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니 우루루 아이들이 들어오더니 자기 가방 속 도시락을 허겁지겁 열었다. 교실 안은 삽시간에 아수랑장이 되었다. 자기 도시락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안심하는 아이, 밥 한 숟가락 없어졌다고 소리치는 아이, 생각보다 없어진 양이 적다고 안도하는 아이, 숟가락을 선생님이 썼다고 수돗가로 달려가 씻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만우절을 만끽하며 킥킥댔다.
다음 날 아침에 출석을 확인하러 교실에 올라갔더니 반 아이들이 전부 토라져서 얼굴도 쳐다 보지 않았다.
반장이 일어나서 따라오더니
“선생님,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화 많이 났어요. 우리들이 축구를 할 때 선생님이 부르러 오실 줄 알았는데, 하도 안 오셔서 민수(가명)가 올라가서 보더니 헐레벌떡 뛰어와서 애들한테 선생님이 도시락 다 까먹는다고 소리쳤어요. 아이들이 놀라서 뛰어올라오다가 수학 선생님한테 걸려서 수업 중에 돌아다닌다고 엉덩이 두 대씩 맞고, 도시락 열어보니 밥도 한 숟가락 없고, 반찬도 조금씩 없고, 숟가락도 다 썼고.... 영준(가명)이는 숟가락 더럽다고 울면서 수돗가로 가서 씻고 올라오다가 수학 선생님한테 아직도 돌아다닌다고 한 대 더 맞고... 3학년이 정신 못 차리고 수업 땡땡이 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고 4교시 영어 시간에 학년부장 선생님이 체육복 입고 운동장에 선착순 집합시켜서 하영(가명)이는 젖은 체육복을 창가에 널어놓았다가 마르기도 전에 입고 갔다가 감기 걸리고... 우리 반 전체 운동장 5바퀴 선착순하고... 담임 선생님이 뭐 이래요?
이런 항의를 받고 저녁 때 종례를 하러 들어가다가 반으로 가지 않고 옆 반으로 슬쩍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하는 말.
“아~~~ 담임이 뭐 이래!”
철없는 담임이었지만, 나라는 인간을 향한 지대한 관심. 그런 관심을 언제 또 받아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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