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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국어 1학기 2차 지필고사 (문학의 갈래와 형상화 성취기준) 본문
[1~2, 논술형 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 고재종, 「첫사랑」
1. 윗글의 형상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2점]
① 마지막 연에 주제를 가장 응축적으로 드러냈다.
②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심상을 자극했다.
③ ㉠~㉢은 모두 상징을 사용하였으며, ‘눈꽃’을 의미한다.
④ 눈과 첫사랑의 공통점으로 ‘순수’와 ‘찰라’를 포착하였다.
⑤ 자연 관찰의 결과에 추상적인 감정의 의미를 연결하였다.
2. 밑줄 친 ㉣과 같은 표현 방법을 활용하지 않은 것은? [4.6점]
① 대숲은 좋드라/성글어 좋드라/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드라
- 신석정,「대숲에 서서」
②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윤동주,「십자가」
③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 곽재구,「새벽편지」
④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 버리면/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 문병란,「꽃씨」
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Ⅰ」
논술형 1. 윗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총 10점]
(1) 윗글의 ‘시적 화자’는 누구인가? [4.0점]
(단, ‘나’와 ‘고재종’, ‘시인 자신’은 답으로 인정하지 않음)
<조건> - ‘화자는 ( )하는(했던) 사람이다’의 형식으로 서술할 것. |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다, 첫사랑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등(시적 화자의 의미를 알고 적으면 정답
(2) ‘시적 화자’가 전달하는 ‘첫사랑’의 가치를 시의 주제와 연결하여 조건에 맞춰 4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6.0점]
<조건> -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첫사랑’의 가치를 포함할 것. (가치와 시의 주제 연결 각 2점, 3점) 서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할 것. (1점) |
'첫사랑은 아프지만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한다'처럼
조건에 맞게 서술하면 정답
[3~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3. (가)와 (나)를 비교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4.5점]
① (가)와 (나) 모두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② (가)는 (나)와 달리 명사형 어미로 시상을 마무리하여 시적 여운을 자아내고 있다.
③ (가)와 달리 (나)는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며 리듬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④ (가)는 (나)와 달리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따르며 얻은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⑤ (가)와 (나) 모두 명령형 어조를 통해 대상에게 새로운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4.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1점]
① ㉠: 외로움은 보편적 정서이므로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담담히 견디며 살아야 한다.
② ㉡: 자기에게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③ ㉢: 삶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④ ㉣: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⑤㉤: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능동적인 산 그림자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5. <보기1>, <보기2>를 바탕으로 (가)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5점]
< 보 기 1 > | ||
문학은 가치 있는 내용을 언어라는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학 작품은 언어라는 형식, 가치 있는 주제라는 내용, 형상화된 표현이라는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다. 각 구성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이루게 되는데, 서정 갈래를 통해 형상화하기 위해 ‘주제 및 소재 선택하기-연상하기-시상 전개하기-표현하기’의 4단계를 거칠 수 있다. |
< 보 기 2 > | ||
혼밥․혼술 대세라지만…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외로움’ 한 여론조사 업체가 국민 5천 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에 대해 물은 설문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외로울수록 점수가 높게 나오는 UCLA 외로움 지수에서 한국인들은 80점 만점에 평균 43.94점. 중등도 외로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10명 중 3명은 중고도 이상의 심각한 외로움 단계였습니다.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우울함을 느끼는 정도도 더 높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던 이 ‘외로움’을 사회 문제의 출발점으로 봐야 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 8시 뉴스(김혜민 기자) 2022.10.29. |
① 주제 및 소재 선택하기 –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진 ‘외로움’이라는 현상을 가지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했군.
② 연상하기 – 물가에 피어 있는 수선화를 보며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렸군.
③ 시상 전개하기 – 시각적, 청각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외로움’에 대해 감각적으로 표현했군.
④ 표현하기 – ‘외로움’을 느끼는 대상을 나열함으로써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했군.
⑤ 표현하기 – ‘외로움’의 정서에 대해 화자가 생각하는 바를 대상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을 활용하여 형상화하고 있군.
[6~8]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 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하였다.
뭐 바깥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솔바람 소리를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이날 저녁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란 것이 드러났다.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 주었다.
서울이라고 못난이가 없을 리야 없겠지만 대처에서는 못난이들이 거리에 나와 행세를 하지 못하고, 시골에선 아무리 못난이라도 마음 놓고 나와 다니는 때문인지, 못난이는 시골에만 있는 것처럼 흔히 시골에서 잘 눈에 띈다. 그리고 또 흔히 그는 태고 때 사람처럼 그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런 눈을 가지고, 자기 동리에 처음 들어서는 손에게 가장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워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황수건이는 열 시나 되어서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는 어두운 마당에서 꽥 지르는 소리로, (중략)
“그렇소. 신문이오?”
“아, 그런 걸 사흘이나 저, 저 건너 쪽에만 가 찾었습죠. 제기…….”
하더니 신문을 방에 들여뜨리며,
㉡“그런뎁쇼, 왜 이렇게 쬐꼬만 집을 사구 와 곕쇼? 아, 내가 알었더면 이 아래 큰 개와집도 많은걸입쇼…….” / 한다.
하 말이 황당스러워 유심히 그의 생김을 내다보니, ㉢눈에 얼른 두드러지는 것이 빡빡 깎은 머리로되 보통 크다는 정도 이상으로 골이 크다. 그런 데다 옆으로 보니 짱구 대가리다. (중략)
“이 선생님, 이 선생님 곕쇼? 아, 저도 내일부턴 원배달이올시다. 오늘 밤만 자면입쇼······.” (중략)
㉣그러나 이튿날 그는 오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신문도 그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신문도 그도 오지 않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야, 이날은 해도 지기 전인데 방울 소리가 요란스럽게 우리 집으로 뛰어들었다.
‘어디 보자!’
하고 나는 방에서 뛰어나갔다. 그러나 웬일일까? 정말 배달복에 방울을 차고 신문을 들고 들어서는 사람은 황수건이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제가 성북동을 맡았습니다.” / 한다.
“그럼, 전에 사람은 어디를 맡았소?”
하니 그는 픽 웃으며,
㉤“그까짓 반편을 어딜 맡깁니까? 배달부로 쓸랴다가 똑똑하지 못하니까 안 쓰고 말었나 봅니다.” / 한다. (중략)
웬 포도를 큰 것으로 대여섯 송이를 종이에 싸지도 않고 맨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는 벙긋거리며,
“선생님 잡수라고 사 왔습죠.”
하는 때였다. 웬 사람 하나가 날쌔게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수건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끌고 나갔다. 수건이는 그 우둔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꼼짝 못 하고 끌려 나갔다.
나는 수건이가 포도원에서 포도를 훔쳐 온 것을 직각하였다. 쫓아 나가 매를 말리고 포돗값을 물어 주었다. 포돗값을 물어 주고 보니 수건이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다섯 송이의 포도를 탁자 위에 얹어 놓고 오래 바라보며 아껴 먹었다. 그의 은근한 순정의 열매를 먹듯 한 알을 가지고도 오래 입 안에 굴려 보며 먹었다. 어제다. 문안에 들어갔다 늦어서 나오는데 불빛 없는 성북동 길 위에는 밝은 달빛이 깁을 깐 듯하였다. 그런데 포도원께를 올라오노라니까 누가 맑지도 못한 목청으로, “사······케······와 나·······미다카 다메이······키······카······.” 를 부르며 큰 길이 좁다는 듯이 휘적거리며 내려왔다. 보니까 수건이 같았다. 나는, / “수건인가?” 하고 알은체하려다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홱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이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
||
[A] | ||
- 이태준, 「달밤」
6.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4.0점]
① ㉠: ‘성북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첫인상을 드러내고 있다.
② ㉡: ‘쬐꼬만 집’, ‘개와집’ 등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③ ㉢: 인물의 외양을 ‘짱구 대가리’처럼 우스꽝스럽게 묘사함으로써 인물을 풍자하고 있다.
④ ㉣: ‘원배달’이 되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황수건’이 오지 않는 상황을 통해 황수건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⑤ ㉤: ‘반편’이라는 단어를 통해 ‘황수건’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7. <보기 2>는 윗글과 <보기 1>을 비교한 내용이다. 옳은 것만을 <보기 2>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5.0점]
< 보 기 1 > | ||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
< 보 기 2 > | ||
< 보 기 2 > | ||
ㄱ. 윗글의 ‘황수건’이 겪는 시련은 <보기 1>의 ‘그늘’로 상징할 수 있다. ㄴ. 윗글의 ‘성북동 사람들’은 <보기 1>의 ‘햇빛’과 유사한 존재이다. ㄷ. 윗글의 ‘못난이’와 <보기 1>의 ‘그늘 없는 사람’은 서술자와 화자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이다. ㄹ. 윗글의 ‘나’가 ‘황수건’을 대하는 태도는 <보기 1>의 화자가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
① ㄱ ② ㄷ ③ ㄱ, ㄹ
④ ㄴ, ㄷ, ㄹ ⑤ ㄱ, ㄴ, ㄷ, ㄹ
8. 윗글의 [A]를 이해한 것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4.3점]
< 보 기 > | ||
ㄱ.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서정적인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ㄴ. 외양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ㄷ. 비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통해 내적 갈등이 해소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ㄹ. ‘달밤’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독자들이 각박한 시대에서 소외당하는 인물의 비극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준다. ㅁ. 황수건이 훔쳐온 ‘포도’를 ‘은근한 순정의 열매’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을 향한 서술자의 따뜻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ㅂ. ‘사······케······와 나·······미다카 다메이······키······카······.’를 계속 부르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이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① ㄱ, ㄹ ② ㄷ, ㅁ ③ ㄱ, ㄹ, ㅁ
④ ㄷ, ㄹ, ㅂ ⑤ ㄱ
[9~1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주인과 나그네가 한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향 사람 백(白)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할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다. (중략)
그리고는 시꺼먼 손등으로 입술을 쓱, 손가락으로 김치쪽을 늘름 한 점. 그러던 버릇이, 미스터 방이요. 신사요. 방선생으로도 불리어지는 시방도, 무심중 절로 나와, 손등으로 입술의 맥주 거품을 쓱 씻고, 손가락으로 나조기 한 점을 집어다 우둑우둑 씹는다.
“술은 참, 맥주가 술입넨다······.” / 어느 눔이 만일 무어라고 시비를 하거나 괄시를 한다면 당장 그 나조기를 씹듯이 우둑우둑 잡아 씹기라도 할 듯이 괄괄하던 결기가, 그러다 별안간 어디로 가고서 이번엔 맥주 추앙이 나오던 것이다.
“술두 미국 사람네가 문명했죠. 죄선 사람은 안직두 멀었어.”
“멀구말구. 아직두 멀었지.” / 쥐 상호의 대추씨만한 얼굴에 앙상한 노랑수염 백주사가, 병을 들어 주인의 빈컵에다 따르면서 그렇게 맞장구를 쳐 보비위를 한다. (중략)
이 자리에서 신기료장수 코삐뚤이 삼복이 미스터 방으로 승차를 하여, S라는 미국 주둔군 소위의 통역이 되었다. 주급 십오 불(이백사십 원) 가량의.
거진 매일같이 미스터 방은 S소위를, 낮에는 거리의 구경으로, 밤이면 계집 있는 술집으로 인도하였다.
한번은 탑골공원의 사리탑을 구경하면서, 얼마나 오랜 것이냐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언젠가, 수천 년 된 것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투사우전드 이얼스라고 대답하였다.
또 한번은, 경회루를 구경하면서 무엇 하던 건물이냐고 물었다. 미스터 방은 서슴지 않고,
“킹 드링크 와인 앤드 댄스 앤드 싱, 위드 댄서.”
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기생 데리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하던 집이란 뜻이었다. (중략)
이 밖에도 미스터 방은 S소위에게 조선을 소개한 공로가 여러 가지로 많으나, 대강은 그러하였다.
그 공로에 정비례해서, 미스터 방은 나날이 훌륭하여져 갔다. 8·15이전에 어떤 은행의 중역의 사택이라던 지금의 이 집으로, 현저동 그 집에서 옮아오기는 S소위의 통역이 되는 사흘 후였다. 위아래층을 다, 양식 절반 일본식 절반으로 꾸민 호화스런 저택이었다. 정원엔 때마침 단풍과 가을 화초가 아름다웠고, 연못에선 잉어가 뛰놀고 하였다. (중략)
백주사는 마침내, 진작부터 벼르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백 주사의 아들 백 선봉은, 순사 임명장을 받아 쥐면서부터 시작하여 8.15 그 전날까지 칠 년 동안, 세 곳 주재소와 두 곳 경찰서를 전근하여 다니면서, 이백 석 추수의 토지와, 만 원짜리 저금통장과, 만 원어치가 넘는 옷이며 비단과, 역시 만 원어치가 넘는 여편네의 패물과를 장만하였다.
남들은 주린 창자를 졸라맬 때 그의 광에는 옥 같은 정백미가 몇 가마니씩 쌓였고, 반년 일년을 남들은 구경도 못 하는 고기와 생선이 끼니마다 상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xx경찰서의 경제계 주임으로 있던 마지막 이 년 동안은 더욱더 호화판이었다. 8.15 그날 밤, 군중이 그의 집을 습격하였을 때에 쏟아져 나온 물건이 쌀 말고도, (중략)
일변 고을에서는 ⓐ백 주사가 자식이 그런 짓을 해서 산 토지를 가지고 동네 사람한테 거만히 굴고, 작인들한테 팔 할 가까운 도지를 받고, 고리대금을 하고 하였대서, 백 선봉이 도망해 와 눕는 그날 밤, 그의 본집인 백 주사의 집을 습격하였다. (중략)
있는 말 없는 말 보태 가며 일장 경과 설명을 한 후에, 백 주사는 끝을 맺기를,
“어쨌든지 그놈들을 말이네, 그놈들을 한 놈 냉기지 말구섬 죄다 붙잡아다가 말이네, 괴수놈들일랑 목을 썰어 죽이구, 다른 놈들일랑 뼉다구가 부러지두룩 두들겨 주구. 꿇어 앉히구 항복 받구. 그리구 빼앗긴 것 일일이 도루 다 찾구. 집허구 세간 쳐부신 것 말끔 다 물리구······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내, 재산 절반 노나 주문세, 절반. 응, 여보게 미씨다 방.”
“염려 마슈”
미스터 방은 선뜻 쾌한 대답이었다.
“진정인가?”
“머, 지금 당장이래두, 내 입 한번만 떨어진다 치면, 기관총 들멘 엠피가 백 명이구 천 명이구 들끓여 내려가서, 들이 쑥밭을 만들어 놉니다. 쑥밭을.” (중략)
미스터 방이 그 걸쭉한 양칫물을 노대 아래로 아낌없이 쫙 배앝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공교롭게도, 마침 그를 찾으러 온 S소위가 현관으로 일단 들어서려다 말고(미스터 방이 노대로 나오는 기척이 들렸기 때문에) 뒤로 서너 걸음 도로 물러나
“헬로.” / 부르면서 웃는 얼굴을 쳐드는 순간과 그만 일치가 되었었다.
“에구머니!” / 놀라 질겁을 하였으나 이미 배앝아진 양칫물은 퀴퀴한 냄새와 더불어 백절 폭포로 내려 쏟혀, 웃으면서 쳐드는 S소위의 얼굴 정통에 가 촤르르.
“유 데블!”
이 기급할 자식이라고, S소위는 주먹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고, 그 주먹이 쳐든 채 그대로 있다가, 일변 허둥지둥 버선발로 뛰쳐나와 손바닥을 싹싹 비비는 미스터 방의 턱을,
“상놈의 자식!”
하면서 척컥, 어퍼컷으로 한 대 갈겼더라고.
- 채만식,「미스터 방」
(나)
“사람이 운수 불길혀서 잠시 잠깐 이런 촌구석에 처백혀 있다고 그렇게 호락호락 시삐 보들 마시오! 에이 여보쇼들, 저수지 감시가 뭐요, 감시가! 내가 게우 오만 원짜리 꼴머심 푼수배끼 안 되는 것 같소? 나 임종술이, 이래 뵈야도 왕년에는 사장님 소리까장 들어 본 사람이요!”
그것은 공연한 허풍 아닌 사실이었다. 동대문의 시장 바닥에서 처음에는 목판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포장마차를 할 때라든지, 마지막으로 양키 물건에 손을 대기까지 종술은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좌우간 사장님 소리를 곧잘 듣곤 했었다. (중략)
“무작정 화를 낼 일만은 아니네. 사람이 과거는 어쨌을망정 시방은 사세에 따를 줄도 알어야 장차 또 늘품수가 생기는 벱이지. 안 그런가? 한번 자알 생각혀 보소.” / 지칠 줄 모르는 최 사장의 끈기에 힘입어 익삼 씨도 다시 설득에 나섰다.
“내가 자네라면은 나는 기왕 낚시질허는 짐에 비단잉어에다 월급봉투를 암냥혀서 한목에 같이 낚어 올리겄네. 삽자루 들고 땅띄기허는 배도 아니고 그냥 소일 삼어서 감시원 완장 차고 물가상이로 왔다리갔다리 허면서······.”
“완장요” / 그렇다. 완장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순간적으로 종술의 흥분한 머리를 무섭게 때려서 갑자기 멍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팔에다 차는 그 완장 말입니까?” 종술의 천치스런 질문에 최 사장을 또다시 그 어울리지 않는 너털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이 사람아, 팔 완장 말고 기저구멘치로 사추리 에다 차는 완장이라도 봤는가?”
완장이란다! 왼쪽 팔에다 끼고 다니는 그 완장 말이다! (중략)
어느 시기나 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 보려고 몸부림치는 그의 노력 앞에는 언제나 완장들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완장 앞에서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이었다. 완장 때문에 녹아나는 건 늘 제 쪽이었다. 제각각 색깔 다르고 글씨도 다른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은 한을 품어 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또 많이 선망해 왔던가.
[중략 줄거리]
해방 이전 일제가 양식을 공출해 가자 종술의 아버지는 구들장 밑에 식량을 감추었다가 이웃 박가의 밀고로 완장을 찬 일본 헌병대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 오른손이 불구가 된다.
완장을 찬 일본군 헌병이라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헌병대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는 조선 사람들이 같은 조선 사람한테 심하게 굴었는데, 운암댁은 그들이 일본 헌병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손발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걸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완장에 대한 공포심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중략)
“종술씨, 그 완장 조깨 나한티 벗어 줘!” / “뭐 할라고?”
“얼매나 잘생긴 지집이길래 그렇게나 종술 씨를 사죽 못 쓰게 맨들었는가 한번 귀경이나 헐라고.”
남자가 못 이기는 척하고 벗어 주는 완장을 그니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한때나마 남자의 욕망과 오기가 그 완장 속에는 채취처럼 짙게 배어 있었다. 그니는 완장에다 살짝 입을 맞춘 다음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그것을 시커먼 저수지 위로 집어던졌다. 마치 저보다 젊고 잘생긴 시앗이라도 제거해 버린 듯이 온통 가슴이 후련했다.
- 윤흥길,「완장」
9. (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5.0점]
① 작품 외부의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② 인물의 이동 경로에 따른 사건 진행을 통해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③ 주인공의 과거 회상과 상상을 교차하여 사건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④ 상징적인 소재들의 나열을 통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을 형상화하고 있다.
⑤ 인물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 대사 등을 통해 등장인물의 인물됨을 드러내고 있다.
10. ⓐ에서 드러나는 태도와 유사한 속담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5.0점]
< 보 기 > | ||
ㄱ. 나랏돈도 잘라먹는다. 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ㄷ. 제집부터 꾸리고야 나라일도 본다. ㄹ.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ㅁ. 물에 빠져도 주머니밖에 뜰 것이 없다. |
① ㅁ ② ㄱ, ㄷ ③ ㄱ, ㄴ, ㅁ
④ ㄴ, ㄷ, ㄹ ⑤ ㄱ, ㄹ, ㅁ
11. (가)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5점]
① ‘백 주사’가 8.15 전에는 많은 재산을 보유하며 권력을 행사했던 모습을 통해 친일파임을 알 수 있다.
② ‘미스터 방’이 사회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게 품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인물의 행동에 대한 개연성을 드러내고 있다.
③ ‘미스터 방’이 ‘S소위’에게 탑골 공원의 사리탑과 경회루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통해 역사의식이 무지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④ ‘미스터 방’이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외세의 힘을 상징하는 ‘S소위’의 힘을 빌려 출세를 도모하는 모습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⑤ ‘백 주사’가 조국 광복 이후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조국 광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12. <보기>를 바탕으로 (가)와 (나)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5.0점]
< 보 기 > | ||
「완장」은 주인공 임종술이 완장을 차고 저수지 감시원으로 활약하게 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위선적 권력과 그 권력을 향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하고 공허한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완장에 대한 단순한 선망 정도의 모습을 보이던 종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과 과대망상의 경향을 보이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자초한다. 한편 종술을 감시원으로 고용한 최 사장은, 국가 권력과 결탁한 자본 권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완장은 권력의 하수인임을 표시한 것에 불가한 것으로 매우 보잘것없다. 그러나 이를 의식할 만큼의 지식이 부족한 종술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
① (가)의 ‘방삼복’이 ‘S소위’에게 통역을 하는 이유는 (나)의 ‘임종술’이 ‘완장’을 선망해 왔던 이유와 유사하다.
② (가)는 ‘S소위’를 통해, (나)는 ‘최 사장’을 통해 각각 ‘방삼복’과 ‘임종술’의 부도덕함을 강조하고 있다.
③ (가)의 ‘S소위’와 (나)의 ‘일본 헌병’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은 모두 위선적 권력을 가진 인물을 상징한다.
④ (가)와 (나)는 모두 풍자 대상의 외양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언어유희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며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⑤ (가)의 ‘방삼복’이 ‘S소위’에게 ‘어퍼컷’을 맞는 것과 (나)의 ‘그니’가 ‘완장’을 ‘시커먼 저수지’로 던지는 것은 모두 권력을 추구하던 인물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음을 암시한다.
[13~1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파수꾼 다] 소용없어요, 그건. 사실을 말씀드리죠. 오늘 새벽 눈을 뜨고 있던 건 저뿐이었어요. 모두들 잠을 잤고요. 그 틈을 노려 이리 떼가 습격해 오면 어쩌나 하고 전 두려웠어요. 그래서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갔던 거예요. 그 높은 곳에서 저는 이 황야의 전부를 바라보았죠. 아무 데도 이리는 없더군요. 보이는 거라고는 저 멀리 하늘가에 흰 구름뿐이었어요. 그걸 향해 망루 위의 파수꾼은 “이리 떼다!” 외쳤습니다. 세 번이나요, 세 번. 저는 망루 위에서 그걸 제 눈으로 보았어요. 이리 떼라곤 없어요. 흰 구름뿐이에요.
[파수꾼 나] 얘야, 난 네 마음을 안다. 넌 망루 위엘 올라가고 싶었겠지? 이리가 무서웠고. 더구나 어린 너에겐 이 쓸쓸한 곳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넌 헛소리를 하는 거야. (중략)
[파수꾼 가] 북소리 중지! 이리 떼는 물러갔다!
[파수꾼 다] 정말 이리가 있다고 믿으세요?
[파수꾼 나] 보렴, 방금도 이리 떼가 오질 않았니?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양철 북을 치며 평생을 보냈겠느냐? 서운하다. 아무리 아픈 애라지만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나. (중략)
[파수꾼 다] 오히려 이리가 있다고 믿었던 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땐 숨기라도 했으니까요. 땅에 엎드리면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요, 이리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야 아무 소용 없고요, 양철 북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오직 이제는 제가 본 그 사실만을 말하고 싶어요.
㉠해설자, 촌장이 되어 등장. 검은 옷차림.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정중한 태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중략)
[촌장]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맙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건, 이 편지를 가져온 운반인이 도중에서 읽어 본 모양이더라. “이리 떼는 없고, 흰 구름뿐.” 그 수다쟁이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단다. 조금 후엔 모두들 이곳으로 몰려올 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다. 넌 나 혼자만을 와달라고 하지 않았니? 몰려오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불청객이지. 더구나 어떤 사람은 도끼까지 들고 온다더라. (중략)
[파수꾼 다] 촌장님은 이리가 무섭지 않으세요?
[촌장] 없는 걸 왜 무서워하겠니? (중략)
[파수꾼 다] 아셨으면서 왜 숨기셨죠? 모든 사람들에게, 저 덫을 보러 간 파수꾼에게 왜 말하지 않은 거예요?
[촌장]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파수꾼 다] 거짓말 마세요, 촌장님! 일생을 이 쓸쓸한 곳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렇죠! “이리 떼가 몰려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촌장] 얘야, 이리 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 개의 쓸모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 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되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고,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파수꾼 다] 왜 제가 헛된 짓을 해요? 제가 본 흰 구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겁니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온다죠? 잘됐어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외치겠어요. (중략)
[촌장] (혼잣말처럼) ……그러나 잘될까? 흰 구름, 허공에 뜬 그것만 가지고 마을이 잘 유지될까? 오히려 이리 떼가 더 좋은건 아닐지몰라. (중략)
[촌장] (괴로워하는 파수꾼 다를 껴안으며) 오늘은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나도 내일은 너를 따라 흰 구름이라 외칠 테니. (중략)
[파수꾼 나] 또, 헛치었습니다. 이리는 워낙 교활해서요, 친 것 같아도 가 보면 달아나고 없어요.
[촌장] 다음에는 꼭 잡히겠지요.
[파수꾼 나] 미안합니다. 이번에 잡았더라면 그 껍질을 촌장님께 선사하고 싶었는데……. (중략)
[파수꾼 나] (관객석 쪽으로 돌아서다가, 흠칫 놀라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오죠?
[촌장] 마을 사람들이죠.
[파수꾼 나] 마을 사람들이요?
[촌장] ㉡(관객들을 향해) 어서 오십시오, 주민 여러분. 이 애가 그 말을 꺼낸 파수꾼입니다. 저기 빙긋 웃고 있는 식량 운반인, 이 애가 틀림없지요? 네, 그렇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리 떼인지 아니면 흰 구름인지, 직접 이 아이의 입을 통하여 들어 봅시다.
파수꾼 다, 쓰러질 것 같은 걸음으로 망루를 향해 걸어간다. 나가 근심스럽게 쫓아간다. (중략)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 올라간다. ㉢긴 침묵. 마침내 부르짖는다.
[파수꾼 다] 이리 떼다, 이리 떼! 이리 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가의 손이 번쩍 들려지며 그도 외친다. 파수꾼 나는 신이 나서 양철 북을 두드린다. ㉣북소리, 한동안 계속된다. (중략)
[촌장] 주민 여러분! 이것으로 진상은 밝혀졌습니다. 흰 구름은 없으며 이리 떼뿐입니다. 이 망루는 영구히 유지되어야겠지요. 양철 북도 계속 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이리의 습격 때까진 잠시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돌아가십시오. 가시거든 마을 광장에 다시 모이시기 바랍니다. 수다쟁이 운반인의 처벌을 논의합시다. 그럼 어서 돌아가십시오. 이리 떼가 여러분을 물어뜯으러 옵니다. (중략)
[촌장] 얘, 나 좀 보자. (핫갓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너한테는 안됐다만, 넌 이곳에서 일생을 지내야 한다.
[파수꾼 다] ……네?
[촌장] 마을엔 오지 마라.
[파수꾼 다] (침묵)
㉤바람 부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온다.
- 이강백, 「파수꾼」
(나)
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때 홍무와 부인 양씨는 뒤늦게 계월을 낳아, 남자 옷을 입혀 기른다. 장사랑의 난을 피하다가 부모와 헤어진 계월은 강물에 버려진다. 여공이 계월을 구해 평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아들 보국과 함께 곽 도사에게 수학하게 한다. 남장을 한 계월은 이름을 평국이라 고친 뒤 보국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고, 서달의 난이 일어나자 대원수와 중군장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평국은 헤어졌던 부모를 만나게 된다. 병이 든 평국은 어의에게 진맥을 받고 난 뒤 여자임이 밝혀진다.
이때 평국은 병세가 차차 나아졌다. 생각하기를,
‘어의가 나의 맥을 짚었으니 나의 본색이 탄로 날 것이다. 이제는 할 수 없이 여자 옷으로 바꿔 입고 규중에 몸을 감추어 세월을 보내는 것이 옳겠다.’
하고, 즉시 남자 옷을 벗고는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서 부모를 뵈었다. 그리고 흐느끼니 두 뺨에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에 부모도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계월이 슬픔에 잠겨 우는 모습은 추구월 연꽃이 가랑비를 머금은 듯, 초승달이 구름에 잠긴 듯했으며 아름다우며 침착한 태도는 당대의 제일이었다.
계월이 천자께 상소를 올리자, 임금께서 보셨는데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림학사 겸 대원수 좌승상 청주후 평국은 머리를 조아려 백 번 절하고 아뢰옵나이다. 신첩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장사랑의 난에 부모를 잃었사옵니다. 그리고 도적 맹길의 환을 만나 물속의 외로운 넋이 될 뻔한 것을 여공의 덕으로 살아났사옵니다. 오직 한 가지 생각을 했으니, 곧 여자의 행실을 해서는 규중에서 늙어 부모의 해골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행실을 버리고 남자의 옷을 입어 황상을 속이옵고 조정에 들었사오니 신첩의 죄는 만 번을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에 감히 아뢰어 죄를 기다리옵고 내려 주셨던 유지(諭旨)와 인수(印綬)를 올리옵나이다. 임금을 속인 죄를 물어 신첩을 속히 처참하옵서.’
천자께서 글을 보시고 용상(龍床)을 치며 말씀하셨다.
“평국을 누가 여자로 보았으리오? 고금에 없는 일이로다. 천하가 비록 넓으나 문무(文武)를 다 갖추어 갈충보국(竭忠報國)하고, 충성과 효도를 다하며 조정 밖으로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될 만한 재주를 가진 이는 남자 중에도 없을 것이로다. 평국이 비록 여자지만 그 벼슬을 어찌 거두겠는가?”
- 작자 미상, 「홍계월전」
13. (가), (나)의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3점]
① (가)는 우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현실을 풍자한다.
② (나)는 허구적 인물과 사건을 통해 형상화한 문학 양식이다.
③ (가)는 해설, 지시문, 대사로 구성되고 (나)는 인물, 사건, 배경으로 구성된다.
④ (가)는 서술자의 개입 없이 인물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지만, (나)는 서술자를 통해 인물 사이의 갈등 및 내용을 드러낸다.
⑤ (가), (나) 모두 대사와 행동을 현재 시제로 서술하여 생동감 있게 작품의 내용을 제시한다.
14. (가), (나)의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3점]
① 파수꾼 나: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 없이 강한 확신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인물이다.
② 파수꾼 다: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진실을 밝히려던 인물이다.
③ 촌장: 체제 유지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인물이다.
④ 평국: 권력을 갖기 위해 남장을 했으나 진실이 드러나게 되자 빠른 태세전환을 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⑤ 천자: 남성 중심 사회의 봉건적 가치관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 있는 인물이다.
15.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0점]
< 보 기 > | ||
이 작품은 1974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 당시의 상황은 1972년 군사 정부가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한 상태였다. 유신 체제는 국가 행정의 효율성을 강조하였지만, 그것의 권위주의적 경직성은 국민들의 정치의식과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양심적 지식인, 학생, 종교인 등이 이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
① ‘파수꾼 나’는 유신 체제가 유지되도록 일조하는 존재를 형상화하였다.
② ‘파수꾼 다’는 유신 체제에 저항하다 굴복하게 된 나약한 존재를 형상화하였다.
③ ‘촌장’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무력으로 독재 권력을 연장하는 존재를 형상화하였다.
④ ‘촌장’에게 편지를 가져온 ‘운반인’은 진실을 말하다 처벌당하는 존재를 형상화하였다.
⑤ ‘마을 사람들’은 무력으로 독재 세력을 조정하고 위협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형상화하였다.
16.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4점]
① ㉠: 1인 다(多)역을 통해 등장인물 수의 제약을 극복하고 있어.
② ㉡: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어.
③ ㉢: 인물의 행동을 통해 ‘파수꾼 다’의 내적 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어.
④ ㉣: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어.
⑤ ㉤: 목적 달성을 위해 단호하고 냉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표현하고 있어.
[17~18, 논술형 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했더니 정 진사가, “천지간에 이렇게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서는 별안간 통곡할 것을 생각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그렇긴 하나, 글쎄. 천고의 영웅들이 잘 울고, 미인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하나,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굴러떨어진 정도에 불과하였지, 그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 하는 등의 소리를 질러 대지.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느껴서 나오는 지극하고 진실한 통곡 소리는 천지 사이에 억누르고 참고 억제하여 감히 아무 장소에서나 터져 나오지 못하는 법이네.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적당한 통곡의 자리를 얻지 못해 울음을 참다가 견뎌 내지 못하고 갑자기 한나라 궁실인 선실(宣室)을 향해 한바탕 길게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정 진사는,
“지금 여기 울기 좋은 장소가 저토록 넓으니, 나 또한 그대를 좇아 한바탕 울어야 마땅하겠는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에 감동받아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나는,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칠정 중 어느 정에 감동하여 우는지? 갓난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와 달을 보고, 그다음에 부모와 앞에 꽉 찬 친척들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화를 낼 이치가 없을 것이고 응당 즐거워하고 웃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도리어 한없이 울어 대고 분노와 한이 가슴에 꽉 찬 듯이 행동을 한단 말이야. 이를 두고, 신성하게 태어나거나 어리석고 평범하게 태어나거나 간에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있고, 살아서는 허물과 걱정 근심을 백방으로 겪게 되므로, 갓난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갓난아이의 본마음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
17. 윗글의 내용을 이해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4.0점]
① ‘정진사’와 ‘나’의 관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② 글쓴이는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울고 싶다고 느꼈다.
③ ‘나’는 울음을 긍정적인 기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한다.
④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이유를 기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⑤ ‘정진사’는 ‘나’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에 일부 공감하고 있다.
18. 윗글에 드러난 글쓴이의 관점으로 적절한 것은? [4.3점]
① 모든 감정이 극에 달하면 울음으로 통한다.
② 넓은 곳만이 통곡할 만한 자리라 할 수 있다.
③ 슬픔과 울음이 짝인 것은 진실한 감정을 겪은 결과이다.
④ 영웅과 미인들의 울음은 천지 사이를 꽉 채울 듯이 크다.
⑤ 통곡 소리는 지극한 감정에서 나오므로 웃음소리와 다르다.
논술형 2. 다음 제시문을 읽고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서술하시오. [총 10점]
(가) 수필은 글쓴이가 자신이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감동,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글로써 비교적 형식이 자유롭고, 발상과 표현 면에서 글쓴이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나) 천추의 커다란 울음터라니 千秋大哭場 ㉠재미난 그 비유 신묘도 해라. 戱喩仍妙詮 갓 태어난 핏덩이 어린아이논술가 譬之初生兒 ㉡세상 나와 우는 것에 비유하였네. 出世而啼先 - 김정희, 「요야(遼野)」 |
(1) ㉠의 ‘비유’는 무엇을 무엇으로 비유했는지 윗글(9-8)에서 찾아 조건에 맞춰 재구성하여 서술하시오. [4.0점]
<조건> - 대상(원관념)과 비유한 것(보조 관념) 둘 다 밝힐 것. 서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할 것. |
시야가 툭 터진 곳을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고 비유하였다.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넓은 곳 등 윗글에 나온 표현이면 정답)
(2) ㉡에서 글쓴이의 통곡과 갓 태어난 핏덩이가 우는 것의 공통점을 윗글에서 찾아 50자 이내로 조건에 맞게 재구성하여 서술하시오. [3.0점]
<조건> 서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할 것. 공통점은 하나만 적을 것. |
좁은 곳에 있다가 넓은 곳에 나온 기쁨이다. (의미가 통하면 정답)
(3) (나)의 시적 화자가 윗글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가)에서 근거를 찾아 조건에 맞춰 서술하시오. [3.0점]
<조건> 서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할 것. 이유는 한 가지만 적을 것. |
발상과 표현이 개성적이다. (발상과 표현이 들어가면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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