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미래형 과학실 수업 공개가 있었다. 수업 공개는 다른 학교 구성원을 위해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우리 학교 교사들도 궁금한 사람은 참관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일과 후에 대상 반을 남겨서 하는 게 아니라서 수업이 궁금한 사람은 시간표를 교환하거나 요행 그 시간이 빈 시간이면 가능했다.
나는 후자라 어려움 없이 그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수업 공개는 올해 우리 학교에 오신 샘이 하셨는데, 젊은 과학 교사라 ‘자청’해서 한 것인가, 아니면 누가 공개할 것인가를 협의할 때 침묵을 지키고 있기가 어려워서 한 것인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공개하고 촬영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수업을 참관하는 내내 수업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래형 과학실 수업 공개 목적은, 그 장소를 큰돈 들여서 조성했고, 다른 학교도 정책적으로 구축될 예정이니 먼저 한 곳을 보고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발전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수업 공개는 구축된 시스템이 수업에 어떻게 활용이 돼서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게 돕는지를 최대한 보여주는 단원과 방법으로 진행되어야겠지. 단원 조정이 어렵다면 방법은 최대한 모색해서 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수업은 진행되고 끝났다. 그러나 끝난 후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관여하며 가장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책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래형 과학실을 구축해서 사용하고 외부에 공개하는 과정에서 가장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수업 공개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미래형 과학실의 구축 과정, 진행상 어려움, 수업 진행에 대한 다양한 활용 방법 등에서 외부 공개든 뭐든 성공하기를 비는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했기에 이미 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수업을 공개한 사람은 기간제 교사였다.
참관을 마치고 나오며 부끄럽고 미안하고 참담한 마음 가눌 길 없이 이날 이때까지 그 장면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 ‘학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남아 계속 가슴을 후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