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 불일치는 지문과 같냐, 같지 않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추론하면 안 돼요.”
“이 문장은 ‘그의 용감한 결정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게 했다.’니까, 추론까지 아니라 롤 모델을 말하는 거잖아.”
“따라 하는 게 그냥 무작정 따라 할 수 있잖아요. 무작정 따라하는 건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없어요. 롤 모델은 존경심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해요.”
"용감한 행동’이란 말 자체에 긍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잖아. 롤 모델은 긍정적인 행동이므로 따라 하는 것을 말하니까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
“그건 선생님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예요. 영어에서 일치를 묻는 문제에서 추론하는 건 아니예요. 지문과 일치하는 것만 해당해요.”
“이 문장 자체가 롤 모델을 말하는 것인데 롤 모델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이잖아. 추론까지 하지 않아도 돼.”
“롤 모델은 존경심이 담겨 있어야 해요. 이 문장만으론 존경심을 갖고 따라 했다고 하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고 선생님 개인적인 생각이예요. 저희가 틀렸다면 틀렸다는 근거를 이 지문에서 찾아보세요.”
영어 시험이 끝나고 한 시간째 영어 교사와 학생들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옆자리에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게 되는 소리를 듣자니 늘어진 반복 재생을 틀어놓은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장금의 대사,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 맛이 났느냐 물으시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가 문득 떠올랐다. ‘롤 모델이라서 롤 모델이라 한 것인데 어찌 그게 롤 모델이냐 물으면’처럼 국어 교사인 내가 듣기엔 도무지 학생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 버클리대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지만 거듭 도전하여 최초로 입학했고, 그의 용감한 도전은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입학하게 하였다는 문장 자체가 롤 모델인데 그게 왜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더 의문이었다.
이틀 동안의 실랑이 끝에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영어과에선 영어과 협의회에 문항을 올리고 거기서 결정 나는 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과목마다 문항을 해석하는 방식이 참 다르구나’ 하고 우리 반으로 들어서는데 민서와 두영이가 수학 시험 점수를 가지고 대화하고 있다.
“나 오늘 수학 시험 괜찮게 본 것 같아.”
“난 수학 전부 다 찍었지만, 문제 푼 너보다 두 번이나 점수가 좋았어.”
“그랬지! 그렇지만 이번엔 내가 너보다 점수가 좋을 거야.”
“그럴까? 하하하~”
“그럴거야. 풀면서 이번엔 느낌이 좋았다고!!!!”
시험이 끝난 오늘 문제의 영어 문항은, 영어과 협의회에서 학생들의 주장도 답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어서 학업성적관리위원를 통과하고 복수 정답으로 채점을 하였다. 그렇지만 1학년 교무실에선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 문장 자체가 롤 모델인데 왜 롤 모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실랑이를 지켜본 교사들의 머리에 계속 남아 있다.
(2023.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