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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15. 방학하고 20여 일이 지났다

나무와 들풀 2024. 2. 10. 20:00

방학하고 20여 일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반 학생들에게 전화를 다 돌렸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어졌고, 그래도 궁금해서 전화하면 낮엔 대부분 학원에 있어 받지 못한다. 통화 기록이 있을 테지만 일부 학생들은 담임 교사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지 않아, 그냥 부재중 전화이기도 하고...모르겠다. 우리 딸도 그렇고, 우리 학생들도 그렇고 그렇게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때 없이 늘 만지작거리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찌 내 전화와 톡은 못 받고, 안 보는지.

종업식이 2월일 땐 겨울 방학 중에 연락을 꼭 했다. 그런데 종업식이 겨울 방학 전으로 가면서 연락하지 않게 된다. 종업식을 먼저 한 것이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2월말까지는 여전히 우리반 학생인데. 종업식도 의식이라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의식이 뭐가 중요하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문화에서 의식은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치다 선생님의 책이었을 게다. 성년식을 예로 들었다. 성년식 이전과 이후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생물학적으로는 같지만, 성년식은 모두가 연극을 하는 것이라고. ‘너 이제부터 어른이 됐으니 행동도 그렇게 해. 우리도 그렇게 대해 줄게.’ 이런 상황을 설정하고, 연극을 하다 보면 어느덧 그런 대접을 받은 사람은 그 상황에 맞추려고 본인도 연극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정신도 마음도 서서히 성장하게 된다고.

그렇게 보면 근대 학교 제도는 문화적으로 청소년이 성인이 되는 시기를 늦추어 놓았고, 학벌주의는 더더욱 늘여 놓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성년이 부모에게 의지하며 청소년기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가 대학에서도, 취업 후 회사에서도 나타난다고. 노령화 사회가 만들어낸 모습인가? 모두가 동안(童顔)을 원하는 마음,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건재함을 보이고 싶은 마음,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은 아이로 살고 싶은 마음......

전화를 모두에게 '한판' 돌리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할 땐 연락한다. 얼마 전에 다은이에게 전화했다. 24학년도 수업 활동을 생각하다 등대 캐릭터가 필요했다. 23학년도에 미술 중점반 담임이었으므로 우리반 학생들에게 이런 캐릭터쯤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같이 일을 해 본 적이 있던 다은이에게 전화했다.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깜짝 놀라며 받았다.

“다은아, 너 어디야?”
“학원이요.”
“어머, 나 끊을게.”
“아뇨, 쉬는 시간이라 한 20분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등대 사진 보낼 테니, 그거 캐릭터로 대충 아무렇게나 그려서 보내줘. 3,000원.”

사진을 보내고 10분도 안 돼서 등대에 눈과 팔이 달린 귀여운 캐릭터가 왔다.
종업식하는 날엔 작년에 가르쳤던 운철이가 와서
“샘, 저 이제 3학년 돼요. 아~ 떨려. 그나저나 겨울 방학 땐 저랑 달리기 한판 하셔야죠. 제가 연락할게요.”

아직 연락이 없다. 공부 학원과 체육 학원 두 군데 다니려니 시간이 없겠지. 휴일엔 친구들도 만나야지, 나랑 달리기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그저 선생님이라고 찾아주고 같이 무엇인가 하자고 해주는 게 고마울 뿐이다.

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 1월 31일까지 점검하라고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오지 않아도 생활기록부는 방학 때 시간을 내서 보고 또 본다. 1학기에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썼기 때문에 2학기와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며 과목 역량이 중첩되지 않게, 학생이 한 활동을 생각하며 적절한 단어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문맥으로 수정한다. 그렇지만 관찰한 것을 기록하라는 생활기록부 지침 때문에 희한한 문장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주어가 서술어를 한 것을 내가 보아서 기록했는데, 그걸 셀프 생기부라 하면 어쩌라고.' 학생이 어떤 사실을 깨닫는 걸, 보면 딱 안다, 그래서 선생이다!

다은이 3천원에 그려준 등대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