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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주도우다3』, 현기영 지음, 창비, 2023

나무와 들풀 2024. 2. 13. 10:07

살아남은 자의 광기

“니네 큰아방, 저기 비석거리에서 광질햄서.”(니네 큰아버지, 저기 비석거리에서 술주정한다.)
제주도에 전학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동네 친구가 우리 집으로 뛰어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술 먹으민 고배시 집에 왕 잘 것이주만 꼭 ᄂᆞᆷ 부끄럽게 비석거리에서 허대는지 모르커라. 나가 죽어사주, 무사 그때 죽지 않앙 살아신고...” 하셨다.(술 먹으면 가만히 집에 와서 잘 것이지 꼭 남 부끄럽게 비석거리에서 설치는지 모르겠네. 내가 죽어야지, 왜 그때 죽지 않고 살았을까)

4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너무나 놀라웠던 큰아버지가 술주정하던 광경, 그 초점 잃은 공허한 눈빛. 「제주도우다 3」을 읽고서야 그 장소에서, 그 눈빛으로, 그런 주정을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서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이나 기타 다른 책, 선배들의 이야기, 금서에서 어렴풋이 우리 큰아버지의 술주정이 4.3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짐작을 했다. 그러나 큰아버지 술주정의 전부였던 웅변과 행진곡풍의 군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레퍼토리였다. 도대체 왜 저런 내용으로 웅변을 하며, 왜 저런 노래를 부르는가! 아무리 친여 성향이 강해도 그렇지, 술 먹고 저렇게 되려면 머릿속에 어떤 게 들어있는 것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큰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다. 대학 영문학과를 나와서 시청공보실에서 시장의 연설문 같은 것을 쓰는 별정직 공무원이었으나,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은 조퇴겠지? 직장을 나와서 술을 마시고 체력이 다해 못 마시고 쓰러질 때까지 몇 날 몇 일을 마시고 웅변을 하고 군가를 불렀다.

그때마다 반드시 ‘비석거리에서 광질’을 했다.
“북한 김일성아! 어쩌고 저쩌고... 우리 국군이 북쪽으로 끝까지 밀고가서 북진 통일을 할 것이다. 어쩌고 저쩌고.... 자유 대한민국 만세!”

언제나 시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북한 김일성아’였고, 끝은 ‘자유 대한민국 만세’였다. 웅변이 끝나면 “백두산 상상봉에 태극기 휘날리자 어쩌고~” 하는 군가 같은 행진곡풍의 노래를 힘주어 불렀다.

언젠가 집 마당에서 놀다가 술 마신 큰아버지가 들어온 걸 보고 후다닥 벽장에 숨었을 때, 나는 큰아버지의 연설과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었다. 큰아버지는 마치 누가 듣는 사람이라도 있는 듯 마당에서 열변을 토하고, 군가를 불렀다.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벽장 속에 있던 나는 그 피끓는 듯한 웅변과 노래를 들으며 ‘참 희한한 술주정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술주정을 마친 큰아버지가 갑자기 발소리를 낮추어 방에 들어와 번개처럼 빠르게 내가 숨어있는 벽장의 커튼을 걷었을 때, 내 심장은 멎는 줄 알았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린 나를 그 눈빛-나를 쳐다보는데, 나를 쳐다보지 않고 내 눈을 뚫고 그 뒤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참으로 희한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냥 방을 나갔다. 오래 전에 돌아가셨으니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우리 큰아버지는 아마도 이 소설의 ‘창세’였을 것이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13,4세 정도 남자였을 것이니 해변에선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창세’처럼 산으로 올라갔다가 소개 작전에서 토벌대에 투항하고 내려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당신은 산군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공산당을 증오한다는 것을 증명해서 겨우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올라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살 당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면서 억지 박수를 쳤을 것이다.

1월 3일 내 생일날 전후해서 밤마다 식게를 하느라 전등을 끄고 촛불만 켜서 온 동네가 캄캄하던 겨울. ‘왜 온 동네 사람들이 매일 제사를 하냐’고 큰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깜짝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속솜허라!“ (조용해라)했다.
“속솜은 무슨 속솜! 뭘 알아야 속솜도 하지!”하고 바락바락 대들어도,

조용히 소리를 낮추어 ‘속솜하라’고만 했다. 어렸고, 악만 남아있었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내 생일인데 해마다 뭐냐고, 생일밥이 아닌 식겟밥만 먹어야 하냐’고 난리를 칠 순 없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4.3이 국가가 저지른 학살이라 인정하고 국가가 그 피해를 배상하고 있다. 그런데도 억울하고 분한 이 마음은 무엇인가? 아직도 제주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그 사실을 속솜하며 마음놓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해결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지 않았는데도 해결됐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