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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주도우다2」 현기영 지음, 창비, 2023-7-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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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주도우다2」 현기영 지음, 창비, 2023-7-23

나무와 들풀 2024. 2. 13. 10:17

“누가 4.3을 비껴갈 수 있으랴, 이 섬에서”

『제주도우다2』는 해방을 맞은 제주의 기쁨과 그 기쁨도 잠시 잠깐에 그치고 이후에 닥친 미군정이 제주도민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조천 사람들과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2권은 내 입장에서 다행스럽게도, 4.3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그 촉발점이 되었던 1947년 3월 1일의 경찰 총격과 그 이후의 전개까지 서술된다.

이 시점에서 영화로 본 ‘용길네 곱창집’이 생각난다. 그 영화를 봤을 때 내 충격은 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에서, 제주인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 이후에 겪게 된 4.3을 직접적으로 말하면서, 겪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지점을 건드려서 그런 것 같다. ‘용길’의 절절한 심정에 가슴이 저리면서 대체 ‘이걸 만든 감독은 누구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와 비교하면 나는 ‘용길’이의 손자 세대인 셈이다. 그 자식이 일본에서 이지메로 자살을 했다면, 한국에 있는 나 같은 손녀들은 4.3이 남긴 결과가 이유가 되어 어린 시절이 갈갈이 찢겨 나갔다.

우리 엄마가 일곱 살 때 4.3으로 부모를 잃고 다섯 살 동생과 오빠, 그렇게 셋이서 어른이 되기까지 어찌 살았겠는가. 일자리를 찾아 떠난 부산에서조차 먹고 살기가 힘들어 일본으로 밀항을 하며 외삼촌에게 나를 맡기고 떠났던 엄마가 일본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산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외삼촌은 또 어땠겠는가. 아무 영문도 모르는 나는 엄마 손에서 외삼촌 손으로, 외삼촌 손에서 친할머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제주도 북군 조천면 조천리 2743번지로 들어갔다.

오~ 부산항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무섭기만 하고 자상함 1도 없는 친할머니와 도라지호를 타고 제주항에 내려 버스를 타며 멀미로 토악질을 있는 대로 다 해 탈진 상태로 들어간 우리 큰아버지 집. 햇살은 청명하고 집은 고요한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 배고파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때 큰아버지의 아들 둘, 나에겐 사촌 동생이 양철 상 위 노란 양푼이에 숟가락 2개 꽂고, 큰 국 대접에 건더기 하나도 없는 된장국을 먹으라고 내놓았다. 딱 내 신세 같은 밥상이었다.

시장기에 눈이 뒤집혀 국을 입에 떠 넣었을 때야 비로소 그 국이 콩나물국임을 알았다. 사촌 동생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그 중 한 놈은 시퍼런 코를 훌쩍이고 있었으며, 밥은 시커먼 꽁보리밥이었다. 우리 큰아버지네가 그렇게 못 살았냐면 아니아니! 오히려 중산층에 속했다. 공무원이었으니. 당시 제주도의 삶이 그랬다. 꽁보리밥에 김치와 대식구가 먹는 콩나물국에 콩나물 한 줌 넣어 먹어도 살기 어려운 삶이었다. 제주도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육지에 공출로 다 뜯겨 정작 거기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박박 기며 살아도 입에 보리밥 외에는 넣을 수 없는 삶이었다. 그 삶이 7~80년대로 이어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공출을 강제로 걷어갔으니 반발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중에게는 밥이 하늘인데 그 하늘을 가져가겠다는데 누가 가만히 앉아서 빼앗길 수 있었겠는가.

아! 누군가는 말한다. ‘나이 들면 제주도로 내려가면 좋겠다’고. ‘그래요, 4.3을 덮으면 아름다운 제주도지요. 그러나 4.3을 덮을 수 있냐고요. 그래서 나는 내려가기 무섭고 싫은 땅이 제주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