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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서평) 『제주도우다 1』, 현기영 지음, 창비, 2023 본문
힘겹게 집어든 책
‘무사 나가 이 책을 사졈신고?’(내가 왜 이 책을 사지는 걸까?)
책을 사는 내 자신이 이상했지만 사야만 했고 사고서는 선뜻 읽을 수 없었다. 소설이 허구라 하지만, 4.3은 어떻게 지어내도 꾸며낸 일일 수 없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고, 아직 끝난 일이 아니며, 끝이 날 수도 없는 일이다. 내 인생이 그렇게 살아지게 된 원인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삶이 그렇게 뒤틀린 것도, 내가 끝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않고 장례식조차 가지 않았던 것도 다 4.3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허구일 수 있을까?
이 책을 한 달 정도 책상 위에 두고 읽지 못했다. 얼마 전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후배 교사에게
“「제주도우다」 사신디 못 읽으커라” ('제주도우다' 샀는데 못 읽겠어)했더니,
“무사 끝을 읽지 않아도 알아부난 못 읽으쿠가?(왜요, 끝을 읽지 않아도 아니까 못 읽는 거예요?) ᄉᆞᄉᆞᆷ은 2권 중간에 나오난 1권은 그냥 ᄆᆞ음 편히 읽읍서.”(사삼은 2권 중간에 나오니까 1권은 그냥 마음 편히 읽으세요.)
“끝을 아는 것도 있주만, 소설보다 현실이 더 모소운 걸 아난 못 읽으커라”(끝을 아는 것도 있지만, 소설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걸 아니까 못 읽겠어)
이런 대화를 나눈 후 어쨌든 1권엔 4.3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후배의 말에 용기를 얻어 책을 잡을 수 있었다.
소설의 시작은 조천 세콧알할망 전설로 시작된다. 세콧알, 빌레못, 연북정, 비석거리... 소설의 배경은 내가 경기도 교사로 발령나기 전까지 살았던 조천이 배경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다가 2학기 무렵 친할머니한테 떠맡겨져 본적인 큰아버지댁에 갔는데 바로 그곳이다.
조천포는 1권에서 큰 배가 드나드는 포구로 묘사되지만 지금은 연북정 옆에 옛날 포구였다는 걸 알리는 표지석이 있을 뿐 한적한 바닷가다. 연북정은 귀양 온 사대부들이 북쪽에 있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표현된 정자라지만 지금은 작은 유적지 정도고 여름이면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임시로 건져놓기도 해서 어릴 적엔 귓것이 나타난다고 거기서 잘 놀지도 않았다.
빨간 케미슈즈를 신고, 샤프펜슬과 24색 왕자파스를 책가방에서 꺼내는 ‘육지 아이’인 나는 검은 고무신을 신은 친구들이 선뜻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육지 아이’가 아닌 ‘조천 것’으로 인정받을 때가 있었다.
큰아버지 밥상과 나머지 모두의 밥상이 있는 아침 상, 모두의 상에서 등을 돌려 큰아버지 밥상에 내 밥그릇-큰 아방 집에 얹혀사는 게 노랗고 큰 양푼에 식구 수만큼 숟가락 꽂은 걸 보고 난리를 쳐서 내 밥그릇을 받았다-을 놓고 큰아버지 상에만 놓인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을 꽂을 때, 등짝을 때리며 ‘지집년이 어디 큰아방과 마주 아장 밥을 먹어!’ 하고 친할머니가 나무랐다. 그때마다,
“지금 시대에 무슨 큰아버지 상, 식구들 상을 따로 하냐!”고 따박따박 대드는 나를 큰아버지는
“허허~ 이거 조천 거 맞네. 여기서 먹으라!” 했다.
조천은 그런 곳이었다. 제주도가 수탈당할 때 앞장서서 저항했던 투사들이 나온 곳. 조천포를 통해 들어온 저항의 인물들이 제주의 여인을 만나 정착했던 곳이니 고분고분한 DNA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 제주도의 걸출한 독립 투사인 김시용, 김문준, 김시범의 생가터라고 박힌 표지석이 한 동네 안에 줄줄이 있는 우리 동네의 조선 후기부터 해방 직후까지의 이야기가 「제주도우다 1」에서 현기영의 담백한 문체를 만났다. 여기까지도 평정을 지킬 수 없는 내가 나머지 이야기의 서평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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