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금요일 기말고사가 끝났다. 1학년 국어는 26일 수요일에 시험이 있었는데, 시험 끝나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이 나를 보자
“샘, 시험이 너무 어려웠어요.” 하며 아우성을 쳤다.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2학기엔 똑바로 낼게요.” 하고 사과했지만, 우리가 잘못 했다는 것은 채점을 하면 할수록 확실하게 느껴졌다.
4월이었나? 교장님이 성취평가제 운운하며 고교학점제를 대비하기 위해 시험 문제를 25문항 이상 내라고 했을 때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생각했고, 1차 지필에서는 25문제 같은 23문제를 냈었다. 그때는 논술형 2문제에서 각각의 문제를 작은 문항으로 쪼개서 내니 문항수로는 25문항으로 셀 수 있었고, 그 정도는 널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험처럼 학생들이 숨넘어갈 듯 문제를 풀지는 않았다. 그리고 1차 지필은 문법 단원과 말하기 단원이라 지문 분량도 적었다. 그런데 2차 지필고사는 문학 단원이라 지문도 길었고, 문항도 내다보니 28문항 같은 25문항이 되어버렸다.
아!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내 안의 야생성이 죽었나 보다.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도 안 되고, 문제 푸는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했어야 했는데 시험 후에 항의 나오면 어쩌냐 운운하는 말을 전부 받아들여 문항을 출제하는 데 반영해 버렸다. 그리고 정말 항의 같은 건 나오지 않게, 100점 거의 안 나오게, 등급별로 적당히 나열될 수 있게 냈으니 학생들이 아우성을 치는 게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논술형 못 쓰고 그냥 낸 학생들의 답지를 채점하며 미안한 마음이 안 들 수가 있겠나! 너무 미안해서 수업에 들어가서 2학기부터는 시험 문항 2-3문제 줄여서 문제 푸는데 조급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더니 “제발 그래 주시면 고맙죠.”라고 해서 더 미안했다. 아마도 주말을 보내며 시간이 지났고, 시험이 다 끝나서 여유롭고, 방학이 다가오는 즈음이라 학생들 마음이 너그러워진 덕을 보는 것이겠다. 항상 마음의 끝을 벼리며 살아야 하는데, 자꾸 편해지려는 마음이 들어 깜짝 놀란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났지만 나는 일요일에 시합이 있었다. 시합을 앞두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괜히 시합을 신청한 것 같아. 너무 떨리고, 완주 못할까 봐 두려워.”라고 말했더니, “에이~ 완주는 하실 거예요. 연습 착실히 하셨잖아요.”라며 용기를 준다.
일요일, 그쪽 지방에 호우 특보가 내려진 속에서 경기는 싸이클만 취소되고, 아쿠아슬론(수영과 달리기를 하는 경기)으로 변경되어 시합이 진행되었다. 수영할 때 바닷물이 혼탁해서 시야는 하나도 안 보였다. 수영은 기록별로 그룹으로 나누어 출발했는데, 내 그룹 바로 뒤가 가장 느린 그룹이었다. 이 그룹은 초보자들이 많이 섞여 있고 수영 실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시합을 아주 거칠게 한다. 특히 수영 경기장의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허둥대며 옆 사람을 못 보고 팔로 치고, 발로 차고, 허리를 누르고 덮치면서 수영하는데 정작 본인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수영 하는 내내 팔꿈치로 맞고, 발로 채이고, 허리를 누르며 내 위로 지나가는 선수들 때문에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지만, 구력이 긴 탓에 호흡을 진정하며 물에서 무사히 나와 달리기까지 완주했다.
완주 후 반톡에 무사 완주를 알리고 시합 후 받은 빵을 찍어 올려 먹고 싶은 사람 물었더니 민건이가 달라고 했다. 오늘 조회 시간에 완주 메달은 우리 반에 걸었고, 빵은 민건이에게 줬다. 옛날엔 시합에서 받은 빵은 우리 딸이 먹었는데, 애가 크니 우리 반 학생들이 먹는다. 메달은 용규가 달라고 해서 내년 2학년 올라갈 때 가지고 가라고 했더니 좋아한다.
방학 전 시간을 내서 이번 시합의 깨달음을 우리 반 학생들과 이야기해야겠다.
‘하수일수록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허둥댄다. 고수는 허둥대지 않고, 그 상황을 분석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며 연습 때 했던 것들을 활용해서 기량을 펼친다. 고수가 되려면 평소에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고, 가끔은 자기 한계를 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훈련도 해야 한다. 그래야 기량이 는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과 한 번쯤은 어울려 연습하며 그 사람들이 연습하는 것, 경기에 임하는 것 등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런데 꾸준히 연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되는데, 한계를 넘는 상황을 자기에게 들이미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걸 해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공부도 인생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