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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번아웃의 종말 /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메디치,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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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번아웃의 종말 /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메디치, 2023

나무와 들풀 2024. 8. 4. 11:52

막스 베버의 ‘프로테트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내용을 접했을 때 경이로웠다.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어떻게 초창기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이 프로테트탄트도 아닌 내 의식까지 깊숙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에는 경악스러웠다. 이 책도 자본주의 관련 책들과 일맥상통한다. 결론은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선 ‘번아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문을 가리지 않고 일이 주는 스트레스는 늘고 보상은 줄었다. 지난 30년 사이 일은 더 나빠졌는데도 보상이 줄었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스트레스는 그 자체가 생물학적인 현상인 동시에 문화적 현상이다.(155쪽)

우리는 돈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근면함을 대단히 큰 가치로 떠받든다. 이 근면이야말로 미국 사회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가치일 것이다.(162쪽) 근면이라는 가치는 우리의 노동이 수익을 내게 만든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번아웃을 유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에 몰입하면 인생이 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잘못된 업무 환경(즉, 미국 일터의 전형적인 환경)에서는 문화적으로 강제된 일에 대한 열의가 번아웃을 유발하기 때문이다.(170쪽)

베버는 자본주의를 ‘괴물 같은 조화’라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제와 도덕의 체계로 인류가 만든 가장 뛰어난 구조였다.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든,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자본주의 윤리에 적응하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빈곤과 비난을 받아들이라는 선택이다. 칼뱅주의자들은 자신이 구원받도록 선출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생산적이며 사명에 맞는 노동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해서 부를 쌓는 것은 신이 그를 구원의 대상자로 인정하다는 증거이므로 종교적으로 위안 받으며 성실하고 엄정하게 노동에 참여하라는 것.(178쪽) 이것은 16세기 칼뱅주의 신학이 21세기에 남긴 반향이다. 이 반향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대한민국까지 미쳐 학교의 교훈 특히 특성화고등학교의 교훈에는 거의 빠짐없이 ‘성실, 근면’을 새겨놓고 있으니 참으로 어마무시하다.

삶의 모든 국면이 일이 되어버린 지금, 총체적 노동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의심한다. 돈뿐만 아니라 통찰과 기쁨까지 모든 것을 고된 노력을 통해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공장노동이 실제로 사람들을 기능물로 바꾸어버렸다고 본다. 그리하여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한 데는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니 더 노오력하라는 교훈이 따라온다. 오늘날의 노동 이데올로기에서는 당신의 성취가 아니라 다음번 성취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총체적 노동이란 악마는 인간의 가치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이 악마는 21세기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노동 외에 칭찬받아 마땅한 활동을 모두 일이라고 표현한다.(181쪽) 그렇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게으르거나 쓸데없는 짓이 되는 것이다.

기업 문화 연구자 알렉산드라 미첼은 번아웃이 도덕적 문제임을 강조한다. 노동을 통해 가치를 증명하라는 끊임없는 요구는 총체적 노동의 사회를 만들고, 이 사회는 후기 산업 시대 일자리가 가진 기대 이하의 환경과 결합해 번아웃 문화가 된다. 그러므로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 바탕을 둔 새로운 이상이 필요하다.(191쪽)

일찍이 소로 선생님은 산업화 시대라는 조건에서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월든>의 상당 부분이 노동에 관한 내용이다. 소로는 자신이 주창한 새로운 극기주의의 살아 있는 모범이 되고자 했고, 가차 없는 검약을 실행했다.(211쪽)

일반적으로 번아웃을 방지하거나 치유하는 법은 모두 근본적으로 미신이다. 번아웃에는 개인적인 구성 방법론보다는 일터와 문화적 이상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 노동의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노동의 경감 또한 요구해야 한다.(218쪽) 성공의 기준 역시 변화해야 하는 문화의 일부다. 번아웃 문화에 균열을 내려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또 여가도 우선시해야 한다.(275쪽)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아! 끝이 너무 싱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