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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25) 빈 자리

나무와 들풀 2024. 5. 21. 12:40

두 주 전 화요일에 우리 반 여주가 자퇴했다. 중국에서 작년에 왔는데 의사소통이 너무 어려워 자퇴하고 집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학업 숙려제가 있고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상담 교사가 어머니에게 권했는데,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면서 바로 자퇴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일이 진행되었다. 엄마는 상담실을 나가며 눈물을 보였다.

여주는 쌍둥이인데, 옆 반에 쌍둥이 동생이 있어 학교에서 늘 붙어 다녔다. 둘은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친구들과 청소 역할을 나눌 때도 무엇을 물어보면 배시시 웃기만 했고,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알았어, 우리가 바닥을 닦을 테니 너는 쓸어.” 하면서 쉬운 일을 여주에게 줬다.

입학하고 두 달이 다 되는데도 여주는 쌍둥이 형제와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항상 붙어 다녔다. 쌍둥이 자매가 붙어 다니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될까만 언어가 되지 않는데, 다른 친구들과 같이 다니지 않고 둘만 다니니 걱정이 되었다. 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만 다른 친구들과 교류를 하면 말을 잘 배울 수 없을 것 같아 상담을 하며 두 가지를 제안했었다. 하나는 학교에서는 둘이 있지 말고 학급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다른 하나는 방과후 집에 갈 때 도서실에 들러 그림책을 빌려 가서 읽고 다음 날 나와 함께 내용을 이야기를 하는 것. 여주와 쌍둥이는 배시시 그 미소 띤 얼굴로 그리하겠다고 했고 내가 추천하는 그림책을 빌려서 갔다.

다음 날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그림책을 읽는데, 발음이 정확하고 또박또박 읽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후엔 더 놀랐다. 또박또박 읽은 것과 별개로 한 문장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 세종대왕님을 원망하기는 처음이었다. 한글을 이렇게 쉽게 만들어서 한국 학생인가 할 정도로 읽는데, 뜻은 모르다니!

여주가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3월엔 우리 반 학생들과 같이 다녔는데, 우리 반엔 중국에서 5살 때 들어온 서윤이가 있어 그 친구와 같이 다녔기에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는 줄 알았다. 수업 시간엔 내가 따로 제재글은 설명해줬고, 이해하기 어려워할 땐 서윤이가 동시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활동은 모둠 친구들과 잘했고, 활동지는 늘 채워져 있었으며 비어있는 경우에는 따로 설명했다. 1차 지필고사 때도 점수는 높지 않았지만, 논술식 답안에 답도 썼고 정확해서 대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고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고 하니 정말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도 학생을 모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중간고사 때 논술식도 잘 썼고, 맞았잖아.”
“그건 공부하니까 할 수 있었어요.”
“아~~~ 너 정말 학습력이 좋은 학생이구나!”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업 시간에 다룬 지문에서 낸 논술 문항을 작성해서 맞았고, 내가 만든 지문에서 낸 논술 문항은 틀렸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 이 아이가 이런 언어 실력으로 그 점수를 맞기까지 얼마나 글을 외우다시피 공부했을까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날이 금요일이었고 다음 주 월요일 여주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화가 와서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했다. 쌍둥이 둘 다 아프다니 걱정이 돼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아프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자퇴서를 쓰러 온 엄마한테 혹시 내가 쌍둥이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해서 자퇴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니라고, 그렇게 하루 이틀에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래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고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그러고 지난 주 금요일, 국제사회부에서 메시지가 왔다.
“1학년 학생들 중에 한국어가 안 되는 친구 조사합니다. 이 학생들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아! 뭐 이런 일이. 자퇴 철회는 안 되는 건가....

지금 여주는 가서 없고, 체육대회에 입으려고 주문한 여주의 반 티만 내 책상 위에 남아있다. 가져간다고 했는데 학교에 오기가 어려운가....

                              2024.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