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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23. 상처

나무와 들풀 2024. 5. 17. 15:40

4월 초의 일이다. 
교직원 조회 때 직장 내 성희롱이나 갑질 관련 신고 안내를 하던 교사가 다소 긴 글을 읽겠다며 3, 4분만 들어달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듣고 있는데, 뭔가 내용이 이상했다.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소개하며 읽는데, 1인칭이 뒤섞이고 어느 학교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작년 내가 우리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일이 연결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사는 낭독을 하다가 어떤 순간엔 전체 교사들을 쳐다보며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듯한 말도 했다. 낭독은 끝났고, 교사는 긴 시간 자신의 글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색했던 교직원 조회는 끝이 나고 우리는 삼삼오오 흩어져서 각자의 사무실로 향했다.

“예를 든 거야, 아니면 어느 학교 얘기야?”
“우리 학교 얘기 같은데.”
“누구 얘기야?”
“자기 얘기 아니야?”

그 샘이 읽었던 이야기는 2년 전 우리 학교 이야기였고, 샘은 몸이 원래 아팠는데 그 일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음 해인 작년 휴직을 했다. 그 샘은 올해 복직을 했고, 당시에 겪었던 일의 트라우마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렇게 모두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학교 이야기처럼 말했던 것이다. 그해에 갑질행위를 한 부장이 떠나고 없는 데도 그 부장과 함께 다녔던 사람들을 보면서 상태가 점점 나빠져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렇게 전체를 대상으로 말을 했다고 했다.

그 샘이 갑질을 당하던 그해 나도 우리 학교에 처음 와서 우리 부서 학년 부장과 교과 성취기준과 수업, 교육과정, 시험 때문에 거의 매일 피투성이 싸움을 했었다. 시험 기간엔 몇 차에 걸친 싸움을 했고, 평시엔 수업에서 다루는 교재 때문에 의견이 달랐고, 그 결과 냉랭해진 관계로 지내며 우리 사무실을 살얼음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샘은 싸움은커녕 당하기만 하다가 교장, 교감 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감은 방관하고 책임을 회피했고, 교장은 부장을 두둔하며 샘한테 그 정도는 견딜만 한 거라 했단다.

샘이 앞에서 읽었던 이야기의 요지는 갑질 부장과 교장 교감이 다 떠났지만, 그 부장과 함께 무리 지어 다니던 사람들을 보며 그때 트라우마가 떠올라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니 자신에게 와서 그 당시에 방관하고 무리 지어 다니며 자신을 철저하게 벼랑으로 내몬 것을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하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그샘한테 물어봤다.
“사람들은 사과했나요?”
“네, 다 오셔서 사과했고, 그분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라구요.”

“샘 마음은 괜찮아지셨어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

요즘 오가다 마주치는 샘의 얼굴은 확실히 좋아졌고, 밝게 웃으며 각별한 눈빛을 던지며 지나간다. 이 순한 사람을 그렇게 큰 용기를 내게 만들고, 아프게 하는 학교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


2024. 4월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