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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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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23

나무와 들풀 2024. 4. 8. 16:39

 

'거만한 바보'로 살지 않으려면

 

누군가와 대화할 때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기껏 길게 시간을 들여 설명을 했는데, 하나도 안 들은 것처럼 처음 주장을 되풀이할 때 ‘차라리 우리 집 강아지하고 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재작년 1년을 같이 생활했던 동 학년 동 교과 파트너와 지냈던 악몽이 떠오른다. 그 교사에게 교과 성취기준을 말하면 교과서 출판사 문제은행에서 내려 받은 문제를 보이며 ‘안전한 문제’니 ‘문제없다’고 했고, 그게 문제라고 ‘성취기준’으로 평가문항을 제작해야한다고 말하면 나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했다.

당시 ‘성취기준’으로 수업과 평가 문제를 말하는 내 자신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번번이 소통에 실패하고 싸움으로 끝내며 자괴감마저 들었다. 당시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거만한 바보’였을 것이다.

과학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과학을 아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말할 때, ‘몰라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인문학을 전공했으니 ‘과학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저 자기가 인식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고 받아들이면서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부정할 때 바로 ‘거만한 바보’가 된다.(16쪽) ‘바보’이기만 해도 상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버거운데, ‘거만한 바보’라니 문제 이해나 해결의 능력이 1도 없는 상대인 셈이다.

이 책은 유시민 작가의 필력이 잘 드러나, 읽는 동안 즐거웠고, 내가 어렴풋하게 느끼던 생각들을 과학적 사실로 증명하며 옳다고 지지해주는 데서 오는 든든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필자가 그동안 공부했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이 덤이 과학의 언어를 전혀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공부해야 할 동기를 부여하니 덤치고는 꽤 크다.

인문학의 눈으로 살아온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풀 수 없는 문제일 수 있으나,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답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을 통해 다시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필자의 답변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인간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그의 학습과 통찰력이 좋았고, 부러웠으며,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다.

수학 교사들이나 과학 교사들도 세상을 통찰력으로 바라보며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고, ‘내가 만난 교사들 중에 그런 교사들은 거의 없었다.’라는 내 나름의 판단도 있었다. 그들이 작가와 다른 이유는 아마도 과학적 사실은 알고 있으나,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사물과 사람을 깊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문학적인 사고 과정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쨌거나 인문학 분야에서 학습한 사람들이든, 과학 분야에서 학습한 사람들이든 다른 분야의 눈으로 자기에게 익숙한 것들을 관찰하고 사고하는 것을 하지 않거나, 무시하거나,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반쪽보다 더 적은 영역에서 헤엄치고 있으면서 바다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이거나, 더 나가면 ‘거만한 바보’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과학 공부를 하며 얻은 지식의 한 켠에서 인문학적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고 도덕과 규범을 세우는 작업을, 누구에게도 ‘아웃소싱’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확인한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253쪽)는 깨달음에 공감하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