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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22. 열정 래퍼

나무와 들풀 2024. 5. 17. 15:38

교실에 들어가면 유독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처음 본 학생들 중에 신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신체가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음, 운동을 하는군.’
‘무슨 운동인지 모르지만 동호인 수준은 아니군.’
‘발레를 하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20년 넘게 즐기는 운동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운동으로 달라진 사람의 신체가 눈으로 먼저 들어온다.

우리 반에도 처음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신체가 있었다. 그를 보면서 체육 계열로 진학할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수업 시간에 아주 열심히 참여해서 ‘참 될성부른 나무일세.’라고 흐뭇하기도 했지만, 너무 과하게 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도한 참여에 비하면 활동 결과가 많이 빗나가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고, 이러다가 중간에 빨리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운동하는 이의 자기 관리력으로 수업에 잘 참여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3년 후에 본인이 희망하는 학과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응원했다.

그러다가 그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그 학생이 학습 참여할 때 지나치게 과한 열의를 보이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축구를 했었고, 2학년 때 발 골절로 팀에서 방출이 되어 그 이후로 공부를 했으며, 지금은 아직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해 많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렇게 수업에 필요 이상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하는지, 활동 결과가 하는 것에 비해 많이 빗나가는지 어렴풋하게 설명이 되었다.

이 학생은 3월에 우리 반 자치회장으로 출마했다. 선거를 안내할 때마다 그 내용을 꼼꼼히 묻고, 스마트폰에 메모를 하면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거 당일 유세에서 본인은 자치회장이 되기 위해 한 달 반이나 준비했다면서 발표를 시작했는데, 준비 기간만큼 내용도 반 친구들의 관심을 끌어 다른 후보들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수련회를 갔다. 가기 전 반별 장기자랑에 다른 친구들이랑 랩을 한다고 신청했었고,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자신의 랩 실력을 선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학교 장기자랑에서 랩을 하는 학생치고 잘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랩 실력은 그런 예상을 빗나가 대단히 뛰어났고, 놀라웠다. 그렇다고 래퍼로 나가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럴 만한 실력인지는 그 짧은 시간과 나의 모자란 안목으로 장래에 대해 조언할 바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그 시절 방출당했던 상황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왠지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 그 학생을 볼 때마다 들었다. 그러다 수련회에서 우리 옆 반 담임 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샘이 학생의 내력을 듣더니 한마디 하셨다.

“애를 발이 골절됐다고 방출을 했다니 쓰레기들이군. 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끝까지 학생을 책임져야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입 밖으로 하진 못했지요. 왜냐하면 나는 운동의 세계를 모르니까. 그런데 아기 스포츠단에서 출발해서 수영 선수를 하다가 체육 교사로 살고 있는 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삼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네요.’

그나저나 우리 래퍼는 어떻게 진로 진학 상담을 해야 할까?

2024.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