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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26) 쓰담쓰담

나무와 들풀 2024. 8. 2. 10:02

늘 학교에 오면 아침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다. 이렇게 일찍 나와서 일을 시작해도 매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퇴근하게 된다. 나는 비교적 일을 빠르게 잘 처리하는 사람인데도 이러니, 주어지는 일의 양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학교만 그런 것일까? 우리 사회가 모두의 임금을 짜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학교가 마음 편하고 즐거운 곳이라고 느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은 수행평가 때문에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 같지 않다. 1학기 수행평가의 내용을 적어본다.

프로젝트 1. 지역의 언론을 찾아 정책 논제를 정하고 그것으로 찬/반 입장을 나눠 내용 마련한 후 입론 발표하기(10점), 입론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으로 만들어 주장하는 글쓰기(15점)

프로젝트 2. 진로나 관심사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10점), 자신이 읽은 책을 홍보하는 문구 만들기(5점), 이 과정을 하는 동안 진로 탐색을 하고 읽은 책을 바탕으로 진로 탐색 보고서 쓰기(10점)

각각의 프로젝트에 따르는 과정 활동지와 결과지를 걷다 보면 결석, 조퇴, 지각, 체험학습 등으로 수행평가 점수를 적은 명렬표에 빈칸들이 생긴다. 그 학생들을 불러 어떤 활동에 빠졌는지, 수행평가는 무엇을 못 봤는지 확인하다 보면 학생마다 빠진 부분이 다 다르다. 어떤 학생은 한 과정의 활동이 다 빠져 있고, 활동지를 잃어버려 수행평가가 불가능한 경우에다, 활동지를 집에 놓고 와서 내일 본다고 하고 다음 날 또 결석하는 둥. 챙겨주고, 기다려주고, 빠진 부분 가르쳐주고, 수행평가 설명하다 보면 정신이 나가서 생각하는 바와 입으로 나오는 말이 달라 학생과 내가 동시에 깜짝 놀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제는 종례 후에 이런 북새통을 치르고 있는데, 8반 연준이가 나에게 오더니 “샘, 저 수행평가 시간 더 주시면 안 돼요?” 한다. “그래? 왜 모자라지? 그럼 15분 더 써.” 했더니, 새침해서 나가며 “됐어요. 그냥 안 할래요.” 한다.

우리 반 종례 후 8반으로 갔더니 연준이가 청소하고 있다. “청소 마치고 수행평가 봐.”했더니 왔다. “제가 결석한 건 잘못이지만,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샘은 막 화를 내시고 수행평가 시험지도 저만 늦게 주시고…. 수행평가 볼 때도 입론했던 네 주장도 모르냐고 화를 내시고…. 모를 수도 있는 건데”, “그러니까 지금 시간 더 줄 테니까 보면 되잖아. 그리고 결석한 건 잘못이 아니야.”, “어제 남아서 수행평가 볼 때 참고자료 써야 한다고 말씀도 안 해 주시고.”, “그거 안 써도 감점 안 된다고 했잖아.” 하고 자리에 돌아와 폭탄 맞은 것같이 수행평가와 활동지가 널려 있는 책상을 정리했다.

그때 8반 담임 샘이 무슨 안 좋은 낌새를 느꼈는지 연준이에게 다가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연준이의 폭발하는 울음이 들렸다. 담임 샘이 데리고 나가는데 울음을 참는데도 어찌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 못 하며 엉엉 울며 나갔다.

그 울음을 듣자 연준이가 우는 이유가 바로 느껴졌다. 반 전체 학생들이 주장하는 글쓰기 수행평가를 볼 때 연준이는 쓰기 준비 활동을 해야 하는데, 내가 연준이 입론지를 챙겨가지 못해, 아니 챙겨간다고 했는데 그걸 책꽂이 위에 올려놓고 갔다. 그런데 결석과 지각과 조퇴가 잦았던 한석이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왔다 갔다 하며 수행평가 냈네 말았네 하고 있어서, 그거 먼저 해결하려고 연준이한테 일단 쓰고 있으라고 했다. 그때 연준이는 입론지도 없는데 어떻게 쓰냐고 했고, 나는 네 주장도 모르냐, 발표도 했는데 하니까 모를 수 있죠 라고 했던 대화들. 그리고 다음 시간 늦게 들어온 한석이 챙기다 보니 연준이 다음 순서를 못 챙기고 기다리라고 했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잘하는 학생이라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나중에 연준이와 대화를 나눠야겠구나’ 하는데, 담임 샘이 “요즘 연준이 상황이 안 좋아요. 이모부 돌아가시고….”, “아,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군요. 알았어요. 저도 연준이한테 말할게요.” 했는데 연준이가 얼굴을 씻고 들어온다. 대화하려고 연준이 앞에 앉으니 녀석이 웃음을 푹하고 터트린다. 그 얼굴을 보니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는 가운데 방송으로 퇴임식이 있으니 교직원들 빨리 모이라고 한다. 연준이한테는 쓰고 싶은 만큼 쓰고 내 책상 위에 놓고 가라 하면서 서둘러 나오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 연준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화를 해야겠는데 언제 하지?

 

2024.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