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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중심 수업> 추천사 본문
‘100여년 전에도 듀이는 주입식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혁신학교를 하면서,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미성숙’을 ‘어른이 되지 못한’이 아닌 ‘배움으로 나아가는’의 의미로 이해하면, 교실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혁신학교를 하기 전에 나는 놀이를 하는 교사였다.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교과서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한, 학습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느낌이 있었다. 공부라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알아감’에 대해 희열을 느끼고, 그 ‘알아감’에서 또 다른 ‘모름’이 생겨나고, 다시 ‘모름’을 ‘알아감’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발전이 한 인간의 성숙이 아닌가하는 막연한 생각. 그리고 결국 사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부대낌 속에서 서로가 있음으로 인해 더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하는 느낌. 그러자니 교과서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놀이로 풀어냈다.
그러다 혁신학교를 만나고, 배움의 공동체를 만났다. 수업을 바꾸어야 했고,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학교의 모든 교사들의 수업을 바꿔야 했기에 나 혼자만 하던 놀이 수업을 버리고,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학교 전체에 도입을 하였다.
지금 나더러 ‘당신은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네’하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아니! ‘네’하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 ‘배움의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고, 수준 놓은 수업을 하는 것’ 이게 ‘배움이 공동체’만의 이야기던가? 그건 그것을 알기 전에도 내가 추구했던 수업이고, 교사라면 누구나 추구했던 수업이 아니었던가! 학교 개혁의 비전이며, 철학인 것을 가지고 ‘너 그걸 하니?’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걸 하고 안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배움을 만들고 있는 교사로서 ‘배움의 공동체’든, ‘협동학습’이든, ‘거꾸로 교실’이든, ‘놀이수업’이든 그 안에 있는 정신은 다 같아 보인다. 내가 무지해서 이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어떤 것이든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 서로의 ‘배움’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런 것’을 딱 규정지어 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그냥 수업을 잘 하면 되지 않나 싶다. 그런 이론들은 학자들의 몫이지, 교사의 몫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녕 내가 하는 수업이 궁금하면, 내 교실로 와서 보고 연구해서 ‘000수업’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나와 우리의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일구어내는 수업,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수업. 이런 수업에 그 어떤 테크닉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 교사의 마음과 학생의 마음이 어우러지고, 서로 기대고 협력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교실에 ‘가르치는 기술’ 따위가 감히 어떻게 침입할 수 있단 말인가!
수업은 교사의 철학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성찰에서 만들어진 철학으로 교사는 함께 세상을 살아갈 ‘인간’을 만나고 함께 성장한다. 그래서 수업은 ‘사고하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려야 한다.
나는 올해 뜻밖의 행운을 만나 다른 학교로 국어 수업을 매주 4시간 지원하였다. 우리 학교처럼 시스템이 수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학교, 서로의 동료성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이 스르륵 되는 학교가 아닌, 정말로! 일반적인 학교에서 ‘우리학교’의 수업을 할 경험을 한 것이다. 그 경험이 이 책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강양희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일반 학교에서 ‘혼자’ 맨땅에 헤딩한 절절한 실천의 경험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리라. 아! 이 얼마나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학교에서 행했을까나. 그러나 아이들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살았을지니, 그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그것들을 진짜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나누려는 ‘사랑’의 실천이 이 기록이지 않을까?
‘100여년 전에도 듀이는 주입식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혁신학교를 하면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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