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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 베짱이를 찾아서

나무와 들풀 2019. 3. 19. 11:36

베짱이를 찾아서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박현숙

 

교사로 아이들을 만날 어느 즈음부터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이상했다. 개미는 열심히 일 해서 먹을 것을 잘 모아두어서 겨울에 등 따뜻하고 배불리 지내고,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다 겨울이 오자 먹을 것이 없어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닐 때 개미가 베짱이에게 먹이를 내준다는 이야기다. 개미가 여름 내 열심히 일 하고, 겨울을 대비해 먹이를 모아 두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다. 여름 내내 노래를 부른 베짱이가 겨울에 거지꼴이 되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개미가 베짱이에게 먹이를 내 주는 것이 불쌍한 베짱이를 도와주는 모양새라는 것을 동의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개미 같은 아이도 있고, 베짱이 같은 아이도 있다. 개미 같은 아이들의 특징은 주어진 과제를 성심성의껏 한다. 베짱이는 잘 안 하고 까 불고 놀면서, 때로는 개미처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베짱이 같이 행동하는 아이들을 야단치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의 십중팔구는 교과 성적이 나쁘다.

담임으로 반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이상하게 베짱이가 인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이 교사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수업 시간을 방해하고, 학급 행사를 할 때 이리저리 정신없이 휘젓고 다니면서 무슨 일을 진득하게 하지 않는 아이를 친구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기 어려웠다. 기껏 찾은 이유가 사춘기의 반항심?’ 정도였다.

시흥혁신교육지구가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농사 체험을 창의체험 활동으로 선택하고 마을 선생님들과 했었다. 어느 반이나 개미와 베짱이는 있게 마련이다. 항상 그렇듯이 개미는 농사 짓는 활동을 해도 마을 선생님이 준 과제 고추에 대를 세우는 활동-을 설명대로 정확하게 11 함수로 치수까지 정확하게 재면서 세우고 있었다. 베짱이는? 안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도 센다고 고추밭을 휘젓고 다니면서 고춧대 세우는 친구들을 툭툭치고 놀려대고 있었다.

농사 활동이 끝나고 국어 수업 시간 농사 체험을 소재로 수필 쓰기를 하는데 놀랍게도 개미들이 쓴 글에서 베짱이의 활약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씨는 더운데 고춧대를 세우려니 짜증이 나고 땀도 나고 화도 나기 시작하는데, 베짱이 친구가 밭을 신나게 휘젓고 다니면서 툭툭 건드리고 장난치는 바람에 짜증을 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친구들의 글에서 나오고 있었다. 베짱이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지금도 학교에는 얼마 안 되는 개미와 많은 베짱이가 있을 것이다. 이들 베짱이들이 개미들보다 학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학교의 교육과정이 단조로워서 이들의 재능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열광하는 아이돌도 따지고 보면 베짱이들 아닌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춤추고 노래했던 아이들. 춤추고 노래 잘 하는 것이 아이돌 열풍 덕분에 어른들에게 용인 받고 있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베짱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찾아보면, 판을 깔아주면, 무엇인가 할 수 있게 해 주면 아이들 각자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고 몰입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혁신교육지구사업, 우리 학교 안에 얼마나 많은 베짱이가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각기 다른 판이다. 예술 체육 융합 수업을 하다가, 창의 체험터를 돌아보다, 마을교사 수업 속에서, 다름의 가치를 담은 고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