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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 니가 학생을 알아?

나무와 들풀 2019. 5. 14. 15:30

장곡 타임즈에 낸 칼럼이다.


니가 학생을 알아?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박현숙

   

20년 넘게 교사를 하다보면 아이들 관상에 대해선 반무당(半巫堂)이 된다고 한다. 얼굴만 봐도 어떤 아이인지가 딱 보이는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다.

Y는 누가 봐도 골치 아픈 아이였다. 얼굴에서부터 뺀질댐이 풀풀 풍겨 나오는 데다 그 반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그 아이 때문에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진지하게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일쑤였고, 날이 더워지면 벌떡 일어나서 책상을 발로 차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아이의 담임 교사는 발령 받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Y가 담임 교사에게 소리 지르며 대들기 시작하면 교사는 슬그머니 물러서는 일이 쌓여갈수록 그런 아이들도 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담임 교사는 출산을 하기 위해 학년이 끝나기 3개월 전에 휴직에 들어갔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그 자리를 대신해서 오는 교사가 가는 교사의 업무를 전부 받았으나 그 반의 담임 자리는 3개월 빈 자리를 메꾸는 교사에게 맡길 수 없었다. 협의 끝에 내가 그 반의 남은 담임의 임기를 맡기로 했다.

Y와 그 일당은(학급에서 담임의 권위가 무너지면 그 권위를 대신하는 무리가 생겨나고,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다. 그 질서는 뒷골목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그 상황을 몹시 기뻐하며 떠나는 담임 교사의 무사 출산을 비는 파티까지 벌였다.

담임은,

, 죄송하지만, 정말 지옥에서 탈출한 느낌이에요. 저 아이들이 해주는 파티도 제 출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는 게 기뻐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나쁜 거죠...”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Y3개월 담임이 되었다. 담임이 세워놓은 학급의 온갖 원칙은 착한 아이들에게만 해당이 되었고, 그 일당은 어떤 원칙도 예외인 상황을 보았다.

원칙은 모두가 지키는 것이다.’라는 것을 세우는 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청소.

종례 전에 자기 주변에 있는 쓰레기만 주워서 버리고 가는 게 원칙이었다는데(이 원칙은 Y와 그 일당들이 세운 것이었고, 그래서 이 반이 쓰레기통 같이 지저분했었다.), 그런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순 없었다. 내가 청소 당번들과 같이 교실을 쓸고 닦았다. 그래야 덕지덕지 엉겨붙은 얼룩과 더러움을 제거할 수 있었다. Y도 청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청소에 한 눈이 팔린 사이에 유유히 도망을 쳤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도망을 쳤다. 청소가 끝나고 Y가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내가 바닥을 밀 때, 유리창을 닦을 때, 청소 하려고 책상을 옮길 때 도망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애들한데 물어보면 안 된다. 그게 그 반의 질서였던 거니까.

그런데 Y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하프 마라톤(21.0975KM)1시간 40분대로 끊던 마라토너였다.

그날도 내가 청소를 하는 기미가 보이자, Y는 다시 도망을 쳤다. 내가 불러도 아랑곳 않고 도망을 쳤다. 나는 힐을 신고 있었지만 여유롭게 Y가 도망친 곳과 다른 코스로 달려 교문에 다다랗을 때 저 멀리서 Y가 유유자적하게 친구들과 걸어오고 있었다. 교문에 있는 나를 본 Y

! XX, 담임이 달리기를 잘 하고 XX이야!”하며 소리를 쳤다. 교실에 들어온 우리는 애들을 보내고 Y와 내가 남아 청소를 마무리 하자고 했다. 그런데 Y가 갑자기 쓰레기통을 내 던지며 소리를 치며 울었다.

왜 내가 청소를 해야 해요.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그날 Y는 울면서 쏟아버린 쓰레기를 나와 함께 다시 담아 분리수거 하는 곳까지 얌전하게 버리고 갔다. 그렇게 Y와 나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고 겨울방학이 왔다.

개학날 Y는 방학 전보다 평온한 얼굴에 살이 조금 붙어 성형을 한 것처럼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방학 동안 왜 이렇게 잘 생겨졌냐는 나의 물음에 Y

평소에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요, 방학 때 병원에 갔더니 축농증이 오래 됐다고 해서 수술했어요.”라고 했다.

그 후 Y의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

Y가 너무 신경질적이어서 사춘기 반항인가라고만 생각했는데, 병원에 우연히 가게 되었고 거기서 축농증 진단을 받았는데 코 주변의 엄청나게 많은 고름을 제거 하는 수술을 했다고. 의사가 왜 아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뒀냐고. 아이가 평소에 얼마나 괴로웠겠냐고.

! 소리 지르고, 책상을 발로 차고, 쓰레기통을 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