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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 유범상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나무와 들풀 2019. 7. 31. 15:33

 

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

유범상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박현숙 발췌함

1장 양은 사람을 왜 잡아먹었을까?

  자본주의의 탄생은 영주의 몰락과 진행된다. 농사보다 돈이 되는 양을 키우기 위해 농노를 내쫓고 양을 키우기 위한 울타리를 친 인클로저운동이 일어났다. 쫒겨난 농노 중 일부가 상품을 만들어 팔면서 부를 축적했고 부루주아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노는 도시의 비참한 노동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했다.

2, 성 밖으로 나와 새 세상을 열다

 성 안의 부르주아지는 인클로저 운동, 상업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의 주인이 되었지만 돈을 버는데 불편했다. 정치 권력이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들은 교황과 대척 지점에 선 군주에게 돈을 대주고 군대를 만들게 하여 교황과 귀족을 제압했다. 시민혁명이 일어났지만 그 이익은 부르주아지에게만 돌아갔고 상퀼로트는 제외되었다. 교황과의 싸움을 거치며, 국민국가, 의회, 애국심 등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3, 천국행이 예정된 이기적인 사람

 부르주아지는 자본 축척에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돈은 있지만 자본 축척의 정당성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지 못 했다. 중세적 관점에서 자본 축적에 몰입하는 것은 천박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본 축적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나왔다. 애덤 스미스와 막스 베버와 같은 사람들이다. 상퀼로트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고, 천국은 근면 성실한 자가 갈 수 있는 곳이므로 열심히 일할 것을 권유했다. 긴 노동 시간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가족 윤리도 이에 맞춰졌다. 열심히 일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라고 했다.

4, 민주적인 차별의 위험함 세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고,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새로운 인간형이 만들어졌다. 행복할까? 자본주의는 경쟁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자본을 통해 버는 돈이 더 많고 속도도 빠르다고 분석한다. 그는 오늘날 이제 더 이상 계층 이동은 불가능한 세습 자본주의라 진단한다.

5, 영혼 없는 기계의 멋진 신세계

 자본주의는 프랑스혁명과 챠티스트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자유권과 정치권을 부여하여 민주적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사실은 차별적이다. 자본가가 1%이고 노동자가 99%이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생존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에 단결하지 않는다. 99%의 노동자는 계속 분열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하청 노동과 원청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로 결코 단결하여 지위를 올릴 수 없다.

 팬옵티콘과 쇼핑몰은 관심을 딴 데 돌려 저항을 막는다. 쇼핑몰은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쇼핑몰 안에서 저항하기 보다 적응하며 포식하지만 항상 굶주려 있다. 포식은 자기를 과시하는 상징이자 기호이기 때문에 과시적 소비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유한 계급에 도달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구별짓기를 한다. 그들은 돈을 벌까 고민하지 않고 쓸까를 고민한다. 이것을 노동 계급이 모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6, 킁킁대는 동물에서 말하는 존재로

인간은 킁킁대는 동물이 아니라 말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말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 실존적인 인간을 생존과 생계에만 몰두하며 킁킁대는 동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자본을 소유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늘 생존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성인 호모 폴리티쿠스’, 즉 정치적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경제적 동물로 만든다. 고대 철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이며, 정치는 공동체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공동체 안에서만이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의 일에 관여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하는 광장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람시가 옥중에서 말한 것처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를 상기하자. 오늘날 상퀼로트가 이만큼 참았으니 이제 우리 차례이다라고 의지로 낙관한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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