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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축제 하지 마라 2> 2017년 '오늘의 교육' 본문
마을축제 하지 마라2
장곡중 교사 박현숙
작년에 ‘오늘의 교육’에 ‘마을축제 하지마라’라는 글을 썼다. 말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반어법임을 알았을 것이다. ‘다음 해 또 하겠다, 더 좋게 하겠다.’가 그 글에 담긴 나의 마음이었다.
올해로 장곡노루마루축제를 2회째 하였다. 또 사무국장을 맡았다. 작년에 사무국장을 해서 또 하게 된 것은 아니고, 일이 어그러지면서 사무국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 마디로 똥 밟은 격이었다.
작년 첫 해 때는 마을의 일꾼과 마을의 몇 개 단체, 장곡중학교가 주축이 되어 마을축제가 만들어지고, 동네에 있는 4개 학교는 공연과 전시 분야에 참가하는 형식이었다. 장곡중학교 축제일을 마을축제일과 맞춰 운영했으니, 장곡중학교의 모든 판에 다른 학교와 마을의 판이 들어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런 마을축제였으니 경기도교육청에서 중요한 정책으로 마을교육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장곡동 내의 학교들은 참여하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그래서 학교들은 뒤에서 ‘우리가 장곡중 들러니냐?’하는 말과 함께 마을축제를 추진하는 사무국장인 장곡중학교 교사에 대한 비난과 미움이 누가 전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그런데 그런 말을 전하는 사람들도 꼭 있다.)
작년의 상황을 거울삼아 올해는 장곡동 내 5개 학교가 학교 축제 학사 일정을 똑 같이 맞춘 10월 21일이 마을축제일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마을보다는 학교가 축제의 중심이 되어버렸고, 마을은 학교를 보조하며 참여하는 쪽으로 축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말하면서 노상 인용하는 속담이 있는데, 짐작하다시피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이다. 주로 교육계 쪽에서 이 속담을 끌어다 쓰는데, 마을의 자원이나 지자체의 협력이 필요할 때 사용한다.
이 말을 교사들에게 들을 때마다 과연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학교 교육에 마을의 ‘봉사’만 강조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프리카의 속담이라는데,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경구라면 공동체의 유지존속을 위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세대를 관통하며 깨달은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속담이 어느 한 쪽의 ‘봉사’만을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쪽이 어느 한 쪽의 ‘헌신’만 바란다면 그 공동체는 깨어질 것이니까.
축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샛길로 샌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 축제를 꾸리면서 내내 든 생각이었다.
제 2회 2016년 장곡노루마루축제는 마을의 주축인 일꾼이 학교의 축제 담당 교사와 마을축제 협의를 하면서 충돌이 생기면서 진행이 내내 어려웠다. 충돌의 원인은 학교의 소통 방식과 마을의 소통 방식은 다른데 있었다. 마을과 학교가 갈등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갈등이 생기니 소통 방식이 다른 무리들은 결별 외엔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교사들의 소통 방식은 이런 것이다. 이를 테면 교사 중에 누구 하나가 회의 석상에서 다소 예의에 어긋난 발언과 행동을 관리자에게 한다. 그랬을 때 우린 당사자를 어르고 달래서 회의 석상에서 내보내고, 관리자에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사과를 하고 다시 회의하면서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시 밖에 나가 당사자를 ‘토닥토닥’ 달래주고, 이러면서 문제 해결을 주변 사람들이 꾀하곤 한다. 이것이 학교의 흔한 소통 방식 중 하나다. 내가 마을일을 하고 어쩌고 하면서 학교 밖을 나돌아 다니지만, 학교 밥을 30년 가까이 먹고 있기에 나는 ‘뼛속까지 교사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9월 마을축제 협의회가 있던 날, 마을 일꾼과 학교 교사는 부딪혔고, 나는 ‘학교의 방식’으로 중재하였다. 아뿔싸! 그렇게 자주 만나고, 막걸리 마시고, 회의를 많이 했건만, 나는 정녕 마을을 몰라도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의 해결 방식은 회의가 망가지더라도 예의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그 사람을 당장 눈앞에서 호되게 나무라서, 마을의 일꾼이 받은 모욕감을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뒤에 가서 그 사람을 ‘토닥토닥’하더라도, 그 자리에선 머리통을 쳐서라도 잘못을 일깨우고 일을 바로 잡아야 일꾼이 앞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마을의 일꾼은 돈이나 어떤 직위가 있어서 마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을에 대한 애정으로 하는 일이기에 자존심과 체면이 구겨지면 마을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학교의 방식(이 방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동료 관계가 중요한 학교는 이렇게 해야 앞으로 일을 할 수 있다.)으로 중재를 했으니, 그날 나는 마을에서 팽 당했다. ‘너는 아닌 줄 알았더니, 너도 똑같은 교사구나.’ 이렇게 그들은 한 마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일이 지나 얼마 없어 마을에선 예정되었던 마을축제에 대한 공청회를 취소하자고 나에게 장문의 문자로 통보해 왔다. 마을축제 일정이 각 학교로 통보가 되었고 준비(학교들은 공청회 준비 안 한다. 그렇지만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어김없이 교장들은 태클을 건다. 이러려고 마을축제 한다고 했니... ㅜ.ㅜ)가 되고 있는 마당에 공청회를 못 하면, 약속을 어기는 셈이 된다. 누구와 한 약속인지는 모르나, 예정된 공청회를 못 하면 어디서든 비난은 들어올 것이었다. 학교라고 해서 너는 우리랑 한 편이니 봐줄게 하지 않는다. 학교는 마을일을 하는데 정말 도움이 안 된다. 공청회에 사람도 모아주지 않을 것이고(가정통신문만 딱 보낼게 뻔하다. 마을사업에서 가정통신문으로는 사람 하나 모을 수 없다.), 누구 하나 나서서 할 사람이 없다. 학교는 담당이 아니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을의 일꾼에게 내가 직접 연락하면 안 만나줄 것이라 연줄을 통해 만나서 울며불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공청회 하자고. 공청회만 해 주면 내가 알아서 다 하겠다고. 이때도 마을에선 ‘왜 네가 사과 하냐? 당사자가 해야지. 그래서 학교와 일하기 싫다.’고 했다. 이날 간절한 공세에 마음이 움직였던지, 그 자리에서 공청회 하자고 했다. 마을이 움직이니 공청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마을축제 협의회에 5개 학교 교사들이 참가하고, 공청회 때 협의회에 속한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사회를 보았지만 이런 일들을 거치면서 공청회가 치러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딱 나와 마을 사람들뿐이다. 마을교육공동체라고 말이 좋지,매사 담당자 찾는 교사들은 이 마당에 들어설 틈도 없고, 틈이 있어도 비집고 들어올 교사들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공청회가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마을이 빠져 나가고 학교만 남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진행되었다. 마을이 빠지니 직책만 덩그렇게 남은 동네 어른인 축제추진위원장과 장곡중 교사인 사무국장이 동네 5개 학교와 연합하여 마을과 각 학교에서 벌이는 축제로 만들어져 갔다.
학교의 축제는 학사 일정으로 박혀 있기 때문에 담당자는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의 업무를 추진하기 때문에 마을과 어그러지든 어찌 되든 축제는 결과적으로 하게 된다. 담당자의 고충이 따르겠지만, 학사 일정에 있는 축제가 주변 상황이 어려워서 못하게 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마을은 다르다. 일을 하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빠지면 된다. 누가 그걸 통제하거나, 참석을 종용할 수 없다. 마음이 내켜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되고, 그러다가 손을 놓아버리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마을 축제는 더 이상 마을 축제가 아니다. 동네 학교들의 연합 축제 정도로 보면 된다.
이미 깨진 마을축제판을 왜 끝가지 붙들고 하고자 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그 일의 담당자는 ‘나’였기 때문이었다. 장곡마을축제 ‘사무국장’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 직함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끝맺지 않으면 학교들과의 약속이 어그러지게 되었다. 학교는 마을축제 속에서 학교 축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아이들과 교사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나로선 학교의 담당 업무에 마을축제 사무국장이란 업무 분장이 없지만, 이런 상황이었기에 이미 깨어진 마을과 학교의 관계가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도록 최대한 그럴싸하게 만들어내야 했다.
깨어진 속내를 말하자면, 일하는 과정에서 마을은 우직하고, 솔직했지만, 나를 비롯한 학교는 그러지 않았다. 일은 손톱만큼 하고 생색은 많이 하려 했다. 또한 자신의 일을 업무분장 이외에는 찾으려 하지 않았다. 업무에 적힌 일들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마을축제를 만들어 가는 도중에 생기는 일은 업무에 적힌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날마다 거대하고 엄청난 일들이 덩어리 덩어리로 생겨나고, 그것을 마을과 함께 해결하며 만들어내야 한다.
교사들은 참으로 바쁘다. 출장도 가야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밀린 업무도 있고, 아이들이 느닷없이 벌이는 사고도 종종 있다. 특히 여름 방학에는 연수도 있고, 해외여행도 가야하며, 가족과 시간도 보내야 하고, 개인을 충전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이런 교사들에게 마을축제 일 하자고 말할 수 없다. 교사인 나는 말 할 수 없어서 말 못하지만, 마을은 이런 내가 이상하다. 왜 교사들을 소집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사무국장이 일에서 손 놓고 있냐가 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방학 때 마을축제 일 하자고 말 못 했다. 가뜩이나 축제 담당 교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방학 때까지 축제 일을 하자고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교사들이 생각하는 방학과 마을이 생각하는 방학은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마을이 생각하는 방학이 맞다. 방학이니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니까 마을 축제 일 해도 된다. 오로지 개인을 위해서 방학 쓰는 게 이상한 거 맞다.
마을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마을 축제 내용 만들기는 여름 방학에 집중됐다. 그런데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나를 포함한 교사들이 여름 방학 때 마을에서 공부하며 만들어낸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축제 협의회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버렸다. 마을에서는 ‘일을 할 땐 빼던 교사들이, 이제 와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러니 충돌이 일어났고, 마을축제에서 ‘마을’이 대거로 빠져나갔다. 마을 축제인데 마을이 빠지고 학교들이 축제를 하게 된 우스운 꼴이 되었다. 2회 축제가 우스운 꼴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아직도 장곡동의 학교들은 모른다. 마을과 학교를 걸치고 있는 학부모기획단들과,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만들어갔던 학생기획단들만 안다. 아이고~ 험하고 험한 마을교육공동체의 길이여.
이런 글을 지금 쓰지만, 4월부터 10월까지 축제협의회를 했던 담당 교사들조차도 이런 꼴이 벌어진 것을 모른다. 축제 사무국(하하! 사무국장 한 명 있는데 사무국이라니)에서 공문으로 협의회를 알리면 협의회에 참석했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협의 결과를 전달하는 교사들로서는 마을의 교사에 대한 미묘한 기류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의 추이를 읽지 못한다. 교사들은 협의회에 참석해서 무슨 일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협의회에서 나온 결과들을 학교에 가서 전달하는 기계적인 ‘입장’으로 참가하기에 그런 기류와 사태의 추이는 관심이 없다. 오직 회의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의견도 없다. 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인 일거리들이 본인들 학교로 적게 가면 다행이고, 많으면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이 입장은 내가 교사이기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교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다시 학교에 가면 동료 교사들에게 일거리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교장 교감도 아니고 공동체가 깨어진 학교에서(사정이 이런데,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하라고 하는 경기도교육청을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그냥 교사 공동체가 박살이 났는데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라고?) 교사가 교사에게 무슨 일을 또 던진단 말인가! 그런데 마을은 이런 교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을의 생각은 상식이고 학교는 비상식적이다. 마을과 놀더니 마을편이 됐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사 집단을 밖에서는 참 이기적이라고 본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5개 학교 학부모 연합과 학생 기획단이 꾸려져서 축제를 운영한 것이었다. 마을이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사무국장이 기대고 함께 축제를 꾸려나갈 수 있는 대상은 학부모 연합과 학생 기획단 밖에 없었다.
학부모 연합은 체험 부스 운영 부분을 하나 떼어 갔고, 학생 기획단은 공연 부분을 떼어 갔다. 공교롭지만 다행스럽게 학생 기획단의 고등학생 세 명은 장곡중 출신이었고, 이들의 기획력과 실행력 덕에 무대 진행, 사회자 멘트, 리허설, 포스터 부착 등의 일들이 제때 딱딱 이루어졌다. 학부모 연합 역시 공교롭지만 다행스럽게 장곡중 학부모회가 주축이 되어 체험 부스 신청, 내용 만들기, 예산 사용, 진행까지 무리 없이 되었다.
교사이지만 축제를 생각하면 학교 측에 섭섭함이 많다. 축제를 벌이며 일어난 에피소드를 말하라면 밤을 새어도 모자라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축제 날 마을의 큰 도로에 세 개의 무대가 만들어져서 동시에 종류가 다른 공연이 펼쳐질 때, 어떤 학교는 축제위원회에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공연할 밴드의 악기를 실어 나를 차를 신청하였다. 이름만 걸친 축제추진위원장과 학교 교사인 사무국장만 남은 축제위원회에 차를 신청하면 그 차는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모르는지 묻고 싶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동네 청년회장과 주민자치센타에 부탁하여 차를 빌려 악기를 날랐다. 축제위원회가 어떤 구성원인지 생각을 해 보면 축제위원회 이름만 있고 사무국장 홀로 위원회를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말이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특히 학교 쪽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이야기할 땐 ‘마을’도 없는데 ‘마을’에 ‘교육’에 ‘공동체’까지 이야기 하는 그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다른 동네에 살면서 자가용으로 근무하는 학교가 있는 곳으로 출퇴근 하면서, 학교 밖에 나가 동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무엇으로 그들과 ‘교육’과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소통은 주고받음이 기본인데, 학교에서 무얼 주고 마을로부터 받으려고 하는지도 궁금하다.
제2회 장곡노루마루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동네의 주도로를 무대로 사용하려고 할 때 시청은 경찰서 소관이라고 하고, 경찰서는 시청에서 도로 사용 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하면서 서로 떠넘기고 모른 척하기의 지루한 게임 속에서 시의원을 쪼아대어서 축제 며칠 전에 도로사용 허가가 났다. 교통 통제에 대한 협조 공문을 5개 학교 교장과 마을측 대표의 사인까지 넣어서 보냈는데도, 축제 당일 협조 공문을 안 보냈다고 성질을 부리는 지구대 경찰과 언성을 높였지만 5개 학교 아이들이 각 학교 교문에서 파도처럼 도로로 밀려나오는 장관을 보고 감동에 눈물마저 났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공문 어쩌고 하던 경찰은 어디 가고, 기동타격대에서 우루루 나와 교통 통제를 ‘스스로’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주도로로 나온 아이들은 그 넓은 도로를 단 두어 시간만이라도 활보하고 공연도 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각 학교의 축제 업무를 담당했던 교사들과 다른 교사의 애씀이 있었기에 내용이 채워져서 축제가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학교와 교사에 대해 험담을 해도 학교의 담당자는 담당한 일들을 책임 있게 한다. 그것이 학교다. 그걸 믿기에 마을축제에서 마을이 빠져나가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란 확신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2016년 10월 21일, 5개 학교가 한 날 한 시에 학사 일정을 맞추어 온 동네가 아침부터 떠들썩하게 거리행진과 풍물과 플래시몹으로 축제를 시작했고, 오전에 각 학교에서 축제를 즐긴 후, 오후에 대로에서 5개 학교와 학부모 연합의 공연과 체험 부스가 펼쳐졌다. 저녁에는 마을 공원에서 영상제와 마을 사람들의 공연이 이루어졌다면 이만한 축제가 전국의 어디에서 펼쳐진단 말인가? 그러니 성공적이라고 하는 말이 거짓이거나 과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 성공한 것이냐고 다시 한 번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을이 빠져나가고 학교들 중심으로 진행된 축제는 진정한 마을축제라고 할 수 없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 묻는 물음에 조너선 코졸은 ‘교사로 산다는 것’에서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밝혔다. 마이클 애플의 책들에서도 교육의 목적에 이런 말들이 언급된다.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이유가 단순히 아이들의 성적 향상에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래 맞아’하기엔 뭔가 찜찜한 것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삶을 고민하고 그들이 이 사회를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존재로 자라게 하려면 학교 교육의 중심에 마을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 빠지면 아이들이 삶이 빠지고, 삶이 빠졌는데 사회는 어디 있으며 민주 사회는 어디 있겠는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축제의 내용은 5개 학교 교사들의 교육이 만들어낸 것이다. 5개 학교의 연합이 가능했던 것은 각 학교의 축제 담당 교사들이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에서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주민자치센타의 적극적인 지원과 마을 단체들의 보이는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마을과 학생기획단과 학부모연합에게 끝끝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축제에 교사들이 안 보였다는 것이다. 축제 담당 교사는 있었지만, 축제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교사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말하며 마을의 참여를 원하는 학교에서 마을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마을을 알고 마을을 이해하는 교사들이 없다면 그것은 허상으로 만들어낸 거짓 문서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제2회 장곡노루마루축제를 하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음! 이래저래 비난받을 글을 썼다. 박쥐처럼 마을측도 아니고 학교측도 아닌 나는 마을학교 교장이 되었다가 두 달 만에 잘렸다. 시원하다. 다신 마을일에 발 깊이 담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 보는데 잘 될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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