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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본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18
발췌 박현숙
-한국 독자에게
-서론
-무국적 상태와 난민
아렌트는 무국적 인간의 범주와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 정치의 가장 문제적인 징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최초의 주요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다. 아렌트는 대량 무국적 상태가 시작된 원인을 국민국의 쇠퇴에서 찾는다. “국민”이란 일정 경계로 제한된 영역에 살면서 문화와 언어 그리고 공통의 역사를 지닌 주요 집단을 가리킨다. “국가”란 한 영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법적 상태를 가리킨다.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시기부터 국민과 국가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다. 어떤 사람들이 국민의 ‘참된’ 구성원으로 간주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한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들을 법적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 시민으로 여길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비-시민으로 여겨 배제할 것인지를 말이다. 오늘날 정치적으로 무국적인 사람(난민)은 더욱 강렬하게 더욱 나쁜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다.
-권리를 가질 권리
프랑스의 인권 선언과 ‘양도 불가능한’ 권리에 대한 미국의 선언, 이 양자는 모두 18세기 말에 선언되었고 역사상 중요한 긍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이후로는 신의 명령이나 역사의 관습이 아니라 인간이 법의 근원이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아렌트는 추상적인 인권에 대한 의미에 의문을 가졌다. 왜냐하면 인권을 보호할 어떠한 효과적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렌트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가 ‘권리를 가질 권리’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권리들이 보장되고 보호되는 어떤 조직적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정치체 자체의 상실만으로도 인류에게서 축출될 수 있다.’(고 했으며, 난민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점점 난민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 해당한다.) 전체주의 체제는 인간의 무한한 복수성과 차별화의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렌트는 총제적 지배 논리를 3단계 모델로 설명한다. 첫 번째가 인간에게 법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도덕적 인격의 살해다. 예를 들면, 세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 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세 번째 단계는 개성의 파괴다. 인간의 자발성과 개인적 차별성은 두 단계를 겪은 이후에도 인간이 살아 있는 시체가 되지 않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프리모 레비는 그곳에서 벌어진 인간 본질 자체의 변형을 증명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살아있는 시체와 같았는데, 인간의 자발성, 개성, 복수성이 제거된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맞이했다. 아렌트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사물로 변형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시도한 전체주의의 특징으로 포착했다. 국가 형태로 전체주의는 나치의 패배와 소련의 붕괴로 끝났을 수 있지만, 전체주의적 해결책은 강한 유혹이 되어왔고 또 그런 모습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충성에 근거한 반대(아렌트의 시온주의 비판)
시온주의자들이 행한 선언에서 아렌트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다수민이 유대인아 아니라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에 경각심을 느꼈다. 유대인과 아랍이 적대적이 아닐 때 썼던 ‘유대인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라는 글에서 ‘만장일치의 의견이란 아주 불길한 현상이며 우리의 근대적 대중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며 신념 또한 다르다는 사실에 기초를 둔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을 파괴한다. 만장일치를 이룬 여론은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을 신체적으로 제거하는 경향을 지니는데, 왜냐하면 대중의 일치는 동의의 결과가 아니라 광신과 병적 흥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옹호한 것은 유대인의 조국이지 유대인의 국민국가가 아니었다. 유대인의 조국이란 유대인의 문화가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는 곳, 유대인들이 아랍인들과 연합 국가를 만들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아렌트가 말한 것을 정직하게 직면하지 않는다면 중동에서는 평화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종주의와 분리
인종주의는 인종과는 달리 삶의 사실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며, 그것이 이끄는 행위는 반사작용이 아니라 사이비과적 이론에 기초한 숙고한 행위다. 인종 간의 갈등에서 폭력은 항상 살인적이지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종주의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귀결들이다. 인종주의는 그 인종주의와 관련된 어느 한편이 품은 다소 모호한 편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이데올로기적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행위가 괴물 같은 것이었지 그가 괴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히만은 평범했고 일상적이었으며, 그 자신의 상투어와 언어규칙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후기’에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의 의미를 그는 어떠한 동기도 품지 않았다.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와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하는데 능수능란했다. 그러나 그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상상력을 결여했다 그는 칸트가 ‘확장된 심성’이라고 불렀던 것이 없었다. 아렌트의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악을 신화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은 ‘사유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사유란 어떤 깊이로 들어가 뿌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인데 사유가 악을 대상으로 하는 순간 거기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입니다. ‘슬픈 진실은, 선하려고 악하려고도 마음먹은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최악의 일을 벌인다는 점이다.’
-진리, 정치 그리고 거짓말
진리와 정치가 갈등한 역사는 오래되고도 복잡하다. 아렌트는 진리를 ‘이성적 진리’와 ‘사실적 진리’로 나누었다. ‘이성적 진리’는 수학적 진리와 같은 것이고, ‘사실적 진리’란 그것이 반드시 존재해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점에서 우연적인 것이다. 복수의 인간이 창조한 공적 공간에서 의견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개인은 의견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공적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그 토론을 통해 의견을 형성하기도 한다. 의견 형성은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개인이 수행하는 사적 활동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는 의견들과 진정으로 직면할 때에만 의견은 검증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다. 이성적 진리의 반대는 무지와 오류지만, 사실적 진리의 반대는 고의적 거짓말이다. ‘사실적 정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의견의 자유는 웃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사실 자체는 논쟁 가운데 있지도 않다.’ 불행하게도 사실적 진리를 부정하는 가장 성공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는 사실적 진리가 단지 다른 의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거짓말쟁이는 ‘행위하는 자’이며, 그는 자신의 거짓말과 일치하도록 세계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조직적인 거짓말은 그것이 부정하려고 결심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경향을 항상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적 거짓말과 현대의 거짓말의 차이는 숨기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차이다. 거짓말은 종종 현실보다 더 그럴듯하며 이성에 대한 호소력이 더 강하다. 왜냐하면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거짓말을 듣게 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알고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복수성, 정치 그리고 공적 자유
아렌트가 정치의 의미와 품격을 보여주기 위해 형성했던 개념들 – 행위, 복수성, 탄생성, 말, 현상, 공적 공간, 공적 자유, 권력(강화), 설득 그리고 정치판단. 그녀는 활동적 삶을 구성하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의 활동, 즉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구분한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유형의 활동이다. 작업이란 안정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의 세계-상당한 지속성과 항구성을 갖춘 세계-를 만드는 것과 관련된 활동이다. 행위는 어떤 매개물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유일한 활동이다. 행위는 복수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상응하는 것이다. 복수성이란 우리 각자가 세계에 대한 차별화된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과 행위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차별성을 드러낸다.
행위는 또한 탄생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고립되어 행위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동료 인간들과 공동으로 행위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차별화된 개인으로서 드러낸다. 정치는 인간 사이에 발생한다. 정치는 무지배의 형식이다. 정치적 평등이 정치의 본질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는 ... 평등하지 않으며 따라서 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해 줄 폴리스라는 인위적인 제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유 자체는 아고라, 시장 또는 폴리스처럼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소, 즉 적절한 정치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폭군, 독재자, 전체주의 지도자를 넘어뜨리는 것 자체가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자유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미국혁명과 혁명정신
반란의 목표는 해방이지만, 혁명의 목표는 자유의 기초 놓기다. 헌법 제정이야말로 참된 혁명적 요소다. 지역 시민이 자신의 자치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활동적인 ‘기초 공화국’ 없이는 공적 자유의 정신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공적 자유와 정치적 책임.
-개인의 책임과 정치적 책임
정치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정치의 추악함과 부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려는 경향에 대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최악의 사태의 공범이 된다.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숙고하지는 않았어도 주의력을 갖추고 맞서고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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