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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면과 문명의 사육, 김혜나, 오늘의 교육 본문
사랑의 가면과 문명의 사육, 김혜나 (오늘의 교육)
인간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지각색의 가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는 친절이다. 이런 현상을 존 맥나이트는 현대의 서비스 경제 때문이라고 한다. 서비스는 사랑이 아닌 가면이나 받는 이나 주는 이나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수많은 사랑의 가면들 중에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것은 교육이라는 가면이며 이 가면 속에는 학교와 일과 가족과 국가와 자본과 문명이 모두 얽혀 있다. 우월한 자의 설명이 있어야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교육의 기본 질서는 불평등의 전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결코 평등으로 나아갈 수 없다.(라시에르 무지한 스승) 교육은 교육 대상이 무지하다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들의 무지와 결핍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맞이하는 학교는 가정이다. 마이클 바넷의 <반사회적 가족>에서는 가족이 사랑의 공간일 수도 있지만 사랑을 독점함으로써 사회에 사랑이 존재할 가능성을 차단하므로 가족의 사랑을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에서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반사회적 가족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사회 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을 추하게 만든다. 가족 속의 폭력은 가족을 넘어 전쟁이나 학살과 같은 인류 전체의 폭력이 되기도 하는데 첼리스는 그 원인을 (인간)을 ‘지구로부터 분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교육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데(교육 제도 자체를 폭력이라고 봄) 인간을 제외한 다른 어떤 동물도 교육을 위해 폭력을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은 사육과 동일하다. 그리고 우리는 사육을 하면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육을 사랑과 동일시하는 문명의 역사는 동식물에 대한 사육의 역사와 일치한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육아(교육)은 문명인과 판이하다. 그들은 사육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미성숙하고 결핍된 존재로 가정하고 각종 금기로 으름장을 놓는 문명의 보호적 행태와 정반대로 키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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