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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대한민국의 시험, 이혜정 지음 본문
대한민국의 시험
이혜정 지음, 다산지식하우스, 2021. 16,000원
1부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의 가성비는 어떨까? 한번 따져 보자. 교육을 상품, 학생을 소비자로 놓고
계산해 보자는 얘기다. 학생들이 초중고에서 긴 시간을 쏟아 가며 교육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에 진출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진짜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루는 데 대학이 뒷받침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사의 강의식 수업은 지금 사회에서 전혀 필요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교사의 말솜씨를 기준으로 수업의 질을 평가한다면, 약장수의 재주를 기준으로 약의 효험을 평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강의식으로는 제아무리 잘해도 꽝이다.) 여기서 배움을 얻는 사람이 있긴 하다. 바로 교사다.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신뢰하고 동조하는 것. 이러한 현상을 ‘폭스 박사 효과’라고 한다. (강의식 수업은 이런 효과가 극대화 되는 인간을 키운다. 비판력 못 키운다.)
(교사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공문이며) 공문들은 대부분 교육부나 교육청이 일선 학교들을 관리∙감독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쏟아지는 공문들에는 교사가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받는 현실이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에겐 교육권도 없는데) 지우개조차 (결재 없이) 마음대로 못 사는 교사가 수업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국가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정부가 교사들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만든 국가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핀란드와 캐나다에도 국가교육과정은 있다. 하지만 학교가 길러야 할 핵심 역량에 대한 거시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이다. 핀란드와 캐나다가 교사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교사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발휘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의 역량이 뛰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꽉 막힌 국가교육과정과 넘치는 행정 잡무에 단단히 발목 잡힌 교사들. 교사들의 역량은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낭비되고 있다.
(교과서가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학생에게는 교과서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 교사도 교사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교과서를 알아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검인정교과서는 이 출판사 것이나 저 출판사 것이나 대동소이하다. 국가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어찌나 시시콜콜 세세하게 짜여 있는지, 집필진은 각 항목이 요구하는 내용을 적절하게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핀란드에는 국정교과서는 물론이고 검인정교과서도 없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다.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 모든 학생이 단 한 가지 관점으로 기술된 단 하나의 교과서만 공부해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역사적으로 갈등을 겪어 온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2003년 두 나라의 고등학생 550명이 모여 독일-프랑스 청소년 의회를 발족했다. 이 학생들은 선입견을 없애고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을 담은 역사 교과서를 도입할 것을 양쪽 정부에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우리의 교과서 제도를 한번 의심해 보자.
온갖 분야에서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일어난다면 나라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 한 축에는 인재 양성과 선발을 담당하는 교육이 있다. 나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A+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의 말에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수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울대생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점이 높을수록 비판적 창의적 성향이 줄어들고 수용적 성향이 뚜렷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레미 러프킨, 21세기는 공감의 시대, 다니엘 핑크, ‘공감력’, 하워드 가드너 ‘공감력’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공감력이 없는 사회지도층은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 목표가 되고, 그래서 대중이 맡겨 놓은 막중한 권한을 사사로이 사용하게 되고, 그러다 비리를 저지르게 된다. 덴마크 정규 교육과정에서 ‘우리 반의 시간’은 공감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2부 수업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학생들은 왜 수용적 학습을 할까? 그래야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험의 최고봉은 대입시험이다. 대표적 사례가 수능과 EBS 교재의 연계성 강화 정책이다. 이 교재는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혁신학교들은 일부 미흡한 점도 있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고등학교로 갈수록 동력을 잃는다. 대입시험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책이다.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논술에서도) 학생들은 대부분 논술 준비를 사교육을 통해한다. 논술 문제 자체도 대학별로 유형화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딱히 독창성을 발휘할 여지가 크지 않다. 수능 문제는 질문의 깊이가 아니라 다섯 개 보기의 유사도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고,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 내는 것이 우수한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마주르 교사의 강연 ‘시험 : 배움을 조용히 죽이는 킬러’에서 지적하는 것이 시험 문제와 현실의 문제 사이의 괴리다. 또한 시험 문제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채 해결해야 한다.
IB와 IGCSE는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시험이라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번역을 거치지 않고도 ( 바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 두 개는 시험만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각각이 지정한 교육과정을 따라야 시험까지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과목별 IB 시험 예시 나열)
3부 새로운 시험을 향한 질문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 위해 경제 재건이 필요하다.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인재 재건’이 필요하고. 인재 재건을 위해서는 ‘교육 재건’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IB를 그대로 도입했다. (일본의 예시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IB 시험을 보게 한 후 인터뷰한 것. 시험의 목적과 방향이 달랐으나 궁극적으로 사고력 향상에 좋았다.)
새로운 시험은 새로운 교육과정을 요구한다. 교육과정을 아예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규제’에서 ‘지원’으로 역할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시험은 국가 차원의 대입 시험으로서 도입하고 모든 수험생이 일괄적으로 치르도록 해야 한다.
교육 정책으로 사교육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입 제도가 어떻든 간에 교육 시스템이 어떻든 간에, 돈이 있는 사람은 사교육비를 쓰게 된다. 그러나 사교육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공교육에서 비판적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① 인재 풀, ② 선발 기준, ③ 교육 방식의 문제, ④ 가능성의 문제에서 공교육 안에서 ㅇ루어져야 한다.
4부 앞으로 대한민국은?
교육이 길러야 하는 능력은 지금은 없는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자면, ‘결과’를 가르치는 교육에서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문제해결력’이 중심인 교육에서 ‘문제발굴력’이 중심인 교육으로, 그리하여 ‘지식 소비자’가 아닌 ‘지식 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교육을 바꾸려면 정치가 나서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가 정치권에 강한 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 교육에 침묵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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