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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2) 교실과 바닷속

나무와 들풀 2024. 8. 13. 16:26

3주 방학 기간 중 한 주는 다이빙을 하고 왔다 갔다 하는 데 썼고, 한 주는 교육청에서 외주를 준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했다. 한 주는 1학기에 했던 수업을 정리했고, 2학기 평가 계획을 만들면 방학이 끝난다.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것조차 일반 직장인들보다 긴 휴가이므로 감사하다.

방학하자마자 바로 다이빙하러 필리핀으로 갔다. 그 시기는 태풍 개미가 대만과 필리핀 사이에 있던 때라 거기 있는 동안 홍수에 유의하라는 안전 문자도 여러 번 받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차를 타고 파도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다이빙을 했고, 억수같이 비가 와도 바닷속 활동은 배를 띄울 수 없는 큰 바람만 아니면 괜찮다.

이번 다이빙은 초급인 오픈 워터 자격증을 가진 나와 딸, 자신을 작가라 소개하는 60대의 남자, 마스터 자격자, 강사님 이렇게 다섯 명이 필리핀으로 함께 갔다. 나는 다이빙을 시작한 지 겨우 2년을 넘기고 있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다이빙 클럽에서 강사님이 어딜 가자고 제안하면 시간이 맞고 장소가 끌리면 따라다니고 있고, 이번 방학 필리핀의 아닐라오도 그렇게 해서 갔다.

그런데 이 작가라 소개하는 60대 남자분은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올 1월에 사이판에서 처음 다이빙을 같이 했던 분인데, 안 들려서 그런지 몰라도 물속에서 쓸데없는 움직임을 많이 해서 공기를 너무 빨리 소비했다. 공기를 빨리 쓰면 물속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함께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공기가 가장 적게 남은 사람을 기준으로 출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분과 다이빙할 때는 물속에 있는 시간이 조금 짧을 것이라 예상해야 한다. 이번 다이빙을 가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장애를 향해 가는 것이므로 이분과 함께 하는 다이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이빙은 지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진 세상을 만날 수 있으나 목숨을 걸고 하는 활동이다. 위험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래서 같이 다이빙하는 그룹은 자신뿐 아니라 다이빙 짝,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의 안전을 항상 체크한다. 그런데 이분! 첫 다이빙부터 혼자 출수해서 강사님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다이빙 실력을 따지자면 나도 만만치 않게 좋지 않아서 항상 강사님에게 지적을 받는 편이다.

나와 같이 다이빙을 배우고 항상 같이 다닌 딸은 같은 오픈 워터인데도 강사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우등생이다. 걔는 오픈 워터인데도 마치 마스터 같다고 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신다. 나는 이른바 ‘뽕뜨’(바닷속 2, 30미터에서 중성부력을 못 맞춰 갑자기 떠오르는 것. 출수 전 수심 5미터에서 3분 정도 기다리며 체내에 쌓인 질소를 반드시 배출해야 함. ‘뽕’하고 뜨면 안 됨!)를 잘해서, 같이 다이빙하는 그룹들이 내가 뜨려는 순간 내 공기통을 눌러주거나 다리를 잡아 준다. 나는 다이빙 그룹에서 아주 손이 많이 가고 항상 주시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다이빙에서는 단 한 번도 강사님의 지적을 받지 않았다. 강사님의 주의는 늘 그분에게 가 있었고, 그분은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처음 두 번 연달아 하셨다. 그래서 다이빙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따로 두 사람은 다이빙 순간을 복기하며 학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아니어서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이번에도 나는 아무도 몰랐지만 모두가 하강하는 순간에 혼자만 ‘뽕뜨’를 했다가 내려갔고, 수심 2, 30미터에서 두어 번 ‘뽕뜨’하다가 공기 조끼에서 얼른 바람을 빼서 수면 5미터에 다다르기 직전 급히 내려온 적도 있었다. 오리발을 바닥에서 파닥거려 물속 시야를 흐려놓기를 여러 번 했는데, 이분이 나보다 더해서 강사님의 지적은 매번 그분에게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교실에서 매시간 교사의 눈치를 이리저리 피하며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학생의 심정을 너무나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보다 조금 못하는 학생에게 쏟아지는 교사의 지적을 피해서 다행스럽지만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저질 실력에서 오는 걱정스러움. 언제든 날아들 수 있는 교사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한 눈치와 잘못 하는 것을 지적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그 지적의 대상에 들어가기에 잘하려고 교사의 눈의 피해 해 보는 시도들.

바닷속은 역할과 위치가 바뀐 교실이었다.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격려와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보상, 더 잘하고 싶은 욕구가 그 일을 지속하게 만든다. 바닷속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게 보상이 되고 욕구가 되는데, 교실은 무엇으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보상과 욕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닐라오 바다의 흰동가리. 이 녀석이 자기 방해한다고 내 마스크를 입으로 콕콕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