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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 이재호 지음, 어바웃어북

나무와 들풀 2024. 8. 21. 15:52

눈이 즐거운 책이다. 유럽의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내 손 안에서 컬러로 보는 기쁨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은데, 저마다 익숙한 것이 다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는 것은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미술 작품에 담긴 의미를 그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 나는 패키지 상품으로 갔던 유럽 여행에서 접한 루브르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 외엔 우리나라 현대미술관조차도 거의 가본 적 없을 만큼 미술에 관심이 없다. 그림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막상 그림을 봐도 뭘 봐야 하는지 모르는 내가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술 작품을 해부학의 관점으로 보고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미술을 몰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부학에 관심이 있어 재미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해부학은 아예 접해 본 적이 없으니 미술보다 더 문외한이다. 아마도 미술로 인체를 배우는 데서 나오는 재미라고 해야겠다.

유럽 여행에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실물로 영접했을 때, 규모도 엄청났지만 섬세하게 근육 하나하나를 표현한 노력과 재능에 입이 딱 벌어져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 언급된 것 중 많은 작품들이 교과서인 미술책을 비롯하여 일상에서 접했던 것이어서 익숙한 작품도 많았고, 거기에 실제 인체의 장기와 근육, 뼈 그림이 함께 있어 인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교사가 되어 과학책에서 혈액의 순환을 설명하는 그림을 봤을 때 왜 심장 그림을 왼쪽에 우심실, 우심방을 오른쪽에 좌심실, 좌심방을 그려 넣어 책을 보는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깨달음이 우연하게 왔다. 해부학은 시체를 눕혀 놓고 공부하는 학문이므로 해부학의 시선에서 볼 때 보는 왼쪽은 카데바(해부용 시신)의 오른쪽 심실과 심방이 놓이고, 오른쪽에는 그것의 왼쪽 심실과 심방이 놓인다. 그러니 그것을 보고 그렸을 때 당연히 책을 보는 이의 왼쪽과 오른쪽과는 반대로 좌심방, 우심방 등의 위치가 달라질 수밖에. 그래서 과학책에 보이는 인체 그림의 장기나 뇌, 골격의 위치는 눕혀진 카데바로 생각해야 제대로 보는 것이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인체의 장기 그림을 볼 때 과학책엔 간이 왼쪽에 있지만 내 몸엔 오른쪽에 있다!) 유레카 ~

책을 읽다 보면 글쓴이의 미술의 안목과 지식에 놀라고 인물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미술 작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 특히 작품에 묘사된 인물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그 에피소드에서 인체를 연결하고 다시 작품을 연결하여 해부학적으로 인물을 관찰하며 글쓴이가 의사로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건강 관리 지침을 마지막에 주는 형식으로 많은 글들이 서술되었다. 글쓴이가 주는 지침을 읽다 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두루 지키는 데 도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이었을 때 미술책에서 보디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비너스의 축 처진 왼쪽 어깨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보디첼리가 사랑했던 여인인 ‘시모네타’가 그림의 모델이었으며, 그녀는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다는데 그림에서 어깨가 처진 것은 폐 손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교사가 되어 과학책을 가르치는 자의 눈으로 봤을 때 생긴 궁금증과 어린 시절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가졌던 별 쓸데없는 궁금증이 우연히 읽은 책으로 해결되었다. 심심풀이 땅콩치고는 꽤 개이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