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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5) 이웃집 쌀자루

나무와 들풀 2024. 9. 13. 14:30

옆집에서 20Kg 정도 되는 쌀자루를 우리 집 문 앞에 놓고 갔다. 쌀자루에는 "저희 아이들 항상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쪽지 인사말도 붙어 있었다. 순간 김영란법이 생각났다. 그러나 김영란법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옆집은 자녀가 세 명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두 자녀와 초등학생. 5년 정도 나란히 현관을 두고 살았으니 그 집 자녀들이 유, 초, 중학생 시절부터 내가 봐왔던 셈이다.

가장 큰 자녀는 남성인데, 자전거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 용품, 튜브, 바퀴, 가민 거치대, CO2 카트리지, 인젝터 펌프 등등을 줬다. 그런 것들을 받는 옆집 남학생이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을 때 나는 내 용품들을 당근에 올리지 않고 주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했다.

자전거의 바퀴를 비롯하여 내가 주는 용품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비싼 물건들이고 새것이라 그 집 부모들은 거저 줘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내게 소용없고 받는 이가 기뻐해서 내가 오히려 좋다고 했더니 고맙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때론 보답으로 명절이 지난 후 참치 캔과 스팸을 들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나에게 “집에 많이 들어와서 나눠드리래요.”라며 건네는 남학생의 기쁨이 넘치는 표정을 보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자전거 용품으로 재미를 보기 전 내가 옆집에 건네는 중요한 물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책이다. 그 전에는 내가 봤던 책들은 마을 학교에 기부했는데, 어느 날부터 청소년용 도서는 한 권씩 옆집 문 앞에 놓았다. 처음에는 혹시 쓰레기로 여길까 봐 망설이며 청소년용 책을 옆집 집 현관 앞에서 놓고 외출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놓아둔 책이 없어진 걸 확인하고부터 안심하고 내가 읽은 청소년용 도서는 옆집 앞에 놓았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주부가 “우리 딸이 선생님이 주신 책을 너무 좋아하며 잘 읽어요. 감사해요.”하는 말을 들은 후엔 더욱 적극적으로 책장을 훑어보며 일정한 기간을 두고 한 권씩 옆집 앞에 놓았다.

작년엔 내가 준 책 중 비교적 새 책들이 종이가방에 담겨 우리 집 앞에 놓여있기에, “제가 드리는 책은 옆집 학생들에게 준 것이므로 알라딘 중고 서점에 팔아도, 당근에 내놓아도, 분리수거함에 넣어도, 누굴 줘도 됩니다.”라는 메모를 써서 책 가방에 붙여 옆집 앞에 놓았더니 그 이후부터는 마음 놓고 처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답례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옆집에서 옥수수나 대파, 배추, 무 같은 것을 받았고, 옆집 학생들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를 선물해주었다. 심지어 아무 것도 준 것 없는 막내의 미소와 인사까지 따박따박 받는다.

몇 달 전 동네에서 언론매체를 운영하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다. 마을 미디어로 인터넷 언론을 창간하신 분과 그분을 돕고 있는 분, 몇 년째 마을에서 종이 신문을 만들고 있는 분을 만나 막걸리를 마시며 마을 언론에 대한 이야기며, 우리가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인지 등을 나눴다. 마침 수업 시간에 마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기 주장을 쓰는 글쓰기를 하는 터라 마을 매체의 기사와 칼럼이 필요했고, 혹시 학생들의 주장을 지역에 펼 수 있는 매체도 절실했다.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분들의 명함을 받았고, 긴밀한 협력도 약속했다. 그 이후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다 문득 한 분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예요.”
“그럴 수 있어요? 뭔데요?”하자
“자기가 농사지은 걸 갖다주면 돼요.”한다.
“정말요?”하고 더 물으려다 동네 언론인도 언론인인데 뭘 더 묻나 싶기도 하고 화제가 다른 데로 흘러가기도 해서 의문을 그냥 묻어 두었다.

쌀자루를 받았을 때 김영란법을 떠올렸던 나를 생각하면 요즘 뇌물에 대한 법 해석을 보며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