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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6) 학교와 반려동물

나무와 들풀 2024. 9. 17. 16:30

10여 년 전 혁신중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개를 키우자고 말씀드렸다. 학교에 개가 있고, 학생들이 그 개마저도 함께 살아갈 생명으로 인식하면, 이 또한 중요한 교육이라며 개를 동네에서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아이고, 개털 날리고, 똥 싸면 누가 치우고, 밥은 누가 주며, 방학 때는 어쩌라구요” 라며 손을 내 저으셨다.

“제가 애들하고 할게요. 방학 때도 알아서 할게요.” 라고 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택도 없는 소리! 결국 내 일로 돌아올 거야.” 하셨다.
그런데 더 조르려고 했던 내 마음을 중단시킨 건 영양 선생님과 시설 주무관님이었다. 내가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하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녀서인지 이 두 분이 교장실로 헐레벌떡 들어가셔서

“개는 절대 안 됩니다. 장독대에 털 날아듭니다. 혹시 급식실에 그 털이 하나라도 들어오면 민원에 시달려서 절대 안 됩니다.”
“방학 때 개밥을 선생님이 주시지 않을 겁니다. 개똥도 안 치울 겁니다. 결국 제 일이 될 겁니다. 교장 선생님이 하시는 걸 제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라고 하셨다고 교장 선생님이 내게 전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아쉬웠지만 내 생각을 바로 접었다. 교장 선생님이 반대하셨다면 끝까지 졸라서 어떻게 키웠을 텐데, 시설 주무관님과 영양 선생님이 반대하신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학교를 떠나 여러 해를 다른 데서 근무하다 그 중학교에 볼일이 있어 갔다. 그런데 학교 화단에 학생들이 그리고 만들었을 것 같은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고양이 집과 밥그릇, 물그릇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너무 궁금해서 교장 선생님께 여쭤보니 학교에 길고양이가 서성거리고 있는 걸 학생들이 발견하고 여러 날 지켜보던 끝에 학교에서 키워야 한다고 저희끼리 의논해서 교장 선생님께 결정을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이 알아서 급식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먼 거리의 화단에 집도 마련해주고 밥도 주면서 지금은 전교생의 귀여움을 받는 학교의 마스코트로 지내고 있다고 하신다.

“우쒸 그때 학생들과 의논해서 같이 어쩌고 저쩌고 했으면 개를 키울 수 있었을 텐데” 했지만,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과 협상력이 너무 좋았다.

몇 달 전부터 우리 학교에도 고양이가 사는지 어쩌는지 학교에서 가끔 보였다. 한 번은 이 녀석이 급식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영양 선생님이 기겁을 하며 쫓아냈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 학생들은 그 고양이에게 참치캔도 사다 주고, 먹을 것도 주었나 보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고양이 먹이를 주지 말라.”고 담임들이 훈화하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예뻐하지 말라는 훈화도 하라고 했다. 예뻐하면 학교에 터를 잡고 살 거라고. 다른 데 터를 잡고 살아야 하는데 학교에 눌러앉으면 위생상 골치 아프다고.

우리 반 학생들에겐 고양이의 처지가 딱하지만 급식실 근처를 고양이가 계속 서성거리므로 위생상 문제가 되니 다른 곳을 찾아 가도록 도와주는 게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한동안 고양이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번 주초 학년 부장님이
“누가 고양이 집을 사줬어요. 아주 좋은 고양이 집이 학교 뒤뜰에 놓여 있어.” 라며 고양이 집 사진을 학년 단톡방에 올렸다. 너무 멋지고 예쁜 고양이 집이었다. 그 집을 사준 학생의 마음이 너무 예뻐 하마터면 “아이고 착한 학생이네.” 할 뻔했다. 어쨌거나 고양이 집을 사준 학생을 수소문해서 그날 찾았고 철거가 되었다.

학년부장님은
"아이고 이젠 고양이까지 학년부 업무가 되었네.” 했다.

우리 학교도 혁신고등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