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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3) 각자의 색깔로 2학기 시작, “사랑, 체험, 숙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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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33) 각자의 색깔로 2학기 시작, “사랑, 체험, 숙려...”

나무와 들풀 2024. 8. 21. 15:50

개학을 했다. 잘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학 내내 빈둥거려서 이제부터는 공부 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을 물으니 도영이가 손을 들었다. 도영이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데, 잘 관찰하면 아주 속이 깊은 게 보인다. 그런 학생이 손을 들었으니 정말 공부 열심히 했겠다 싶다.

우리 반 자치회장 하민이는 체험학습으로 교회 수련회에 참가해서 개학하는 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하민이가 개학 날 나오지 않은 것을 놀라워하고 궁금해하는 반 친구들에게 민준이가 하민이 전학설을 퍼트렸다. 놀란 친구들이 나에게 물어보았고, 민준이는 내게 눈빛을 보내며 같이 공모하자고 했지만, 나는 “아뉘~~~ 체험학습 갔어.”라고 냉정하게 민준이의 간절한 눈빛을 튕겨 버렸다.

여름 방학 2주 전에 체험학습을 내고 쌍꺼풀 수술을 한 후 외할머니댁으로 갔던 민지는 붓기가 거의 없는 눈으로 학교에 왔다. 첫날 1교시를 하더니 2교시에 생리통으로 더 이상 못 있겠다며 조퇴했다. 생리통은 아니었고,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짝꿍이 책상을 자기랑 떨어뜨려서 더 이상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다음 날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민지가 체험학습을 낸다고 했을 때, 방학 전에 체험학습을 2주 낼 수 있지만, 그 기간에 쌍꺼풀 수술하고 개학 날 오면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 같다고 내 생각을 말했다. “누가 기말고사 이후에 학교 다니고 싶을까? 싫어도 참고 다니면서 방학을 맞이하고, 방학 동안 마음 추스르고, 다시 학교에 다니는데, 힘든 기간을 너만 피하면 다른 친구들이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더니 이제는 반 학생들이 수군거린다고 자퇴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짝꿍도 하필이면 민수였다. 3월에 민지가 민수에게 고백했는데, 민수는 다른 아이를 좋아한다고 민지를 퇴짜 놓았다. 4월 수련회 때 좋아하는 남학생을 비밀로 하기로 하고 서로 털어놓을 때 민지가 민수를 좋아한다고 친구들한테 고백했고, 수련회 이후 이 일 때문에 사달이 나서 1학기 내내 민지가 자퇴한다, 전학 간다, 어쩐다 했었다. 방학 2주 전 자리를 바꿀 때 민지랑 민수가 같은 짝이었지만, 민지는 체험학습을 냈기에 그냥 넘어갔다. 2학기 첫날 자리를 바꿀 줄 알았는데 민준이가 바꾸지를 않아 마음이 많이 쓰였지만, 다음 주면 바꿀 거고 어차피 같은 반인데 견뎌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민수와 민지의 책상이 떨어져 있는 것도 봤다. 민지 책상은 줄에 맞고, 민수의 책상이 줄에서 튀어나온 걸로 봐서 민수가 책상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그렇다고 민수한테 왜 그랬냐고 초딩 같은 행동 아니냐고, 우리가 민지 학교에 마음 붙이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냐고 다그칠 수 없다. 민수는 엄마, 아빠 모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조부모와 사는 학생이다. 지금처럼 잘 지내고 있는 자체가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민지 엄마와 상담 선생님과 함께 수요일 내내 설득해서 학업 숙려제를 신청하기로 했다. 당장 자퇴하겠다는 마음을 돌려서 2주간 생각하는 기간을 가지라고 했지만, 2주 후에 민지가 학교에 계속 다니겠다고 할지 자신이 없다. 민지는 집으로 가면서 숙려 기간 동안 상담하러 오면 교무실에 들러 나를 보고 가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광복절 내내 민지와 민수와 민지를 도와주려는 친구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민지를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 과연 민지를 위하는 것인지, 책상을 떨어뜨린 민수를 불러 그런 유치한 행동은 창피한 일이라고 지도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명진이와 다예를 불러 민지 숙려 기간에 연락 좀 해주면서 민지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길 부탁해야 하는 거 아닌지......

민수를 불러서 그런 말까지 하는 건 너무 좀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조회 시간에 ‘방학 동안 염색, 파마한 사람 주말에 풀고, 월요일부터 교복 똑바로 안 입고 다니면 사실 확인서 쓰게 하겠다’는 더 옹졸한 방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