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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저, 문학동네

나무와 들풀 2016. 6. 17. 09:16


 

 

황석영, 문학동네, 10000원

 

 크리스마스날 가족 잔치에서 여 언니가 가져온 선물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학년말 정말 시간이 없어서 못 읽고 반납했던 책이었다. 크리스마스 잔치한다고 여 언니한테 어른은 2만원 상당의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책 2권을 사와서 선물로 내놓았다. 그 선물을 내가 따서 결국은 겨울 방학에 읽었다.

 

 책도 사전 정보가 있으면 읽은 맛이 더 깊다. 정보찾기가 중요하다고 수업 시간에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ㅋㅋㅋ...

 이 책도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읽었다. 읽다가 조금 이상해서 날개에 붙은 신경숙 씨가 써 놓은 추천사를 읽어 보니 자전적인 소설이라네. 어쩐지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준이가 작가의 어린 시절이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철 없는 어린시절 한 번쯤은 죽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여러 번 시도도 해 본다. 그게 다 미수로 끝났기에 이렇게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겠지. 또한 자살 미수는 지금 생각컨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휴우~

 나보다 10년 정도 앞선 청춘 시절. 그렇지만 나의 청춘과 그리 다르지 않는 모습.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소설의 준이처럼 학교 관 두고 방랑했다는 건 아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으니까.

 

 내가 성장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밀히 따지면 나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소설인데도 읽는 이유는? 교사라서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이 소설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데? 나의 청춘이 그리워서? 모르겠다. 그냥 소설이니까 재미있어서겠지.

 책을 읽으며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아이들이 즐겨 하던 놀이들, 예를 들면 돌려말하기, 책 내용 인용하기, 시구 표절하기 등은 우리 때도 즐겨하던 놀이였다. 당시 고등학교 땐가? 라즈니쉬의 내 안으로 혁명인가 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질 높은 대화에 끼지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니체는 어떻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안 읽어도 수준이 낮은 아이였던 시절을 살았다. 쿠쿠쿠... 책 몇 권으로 수준이 결정된다는 가소로운 정녕 수준 낮은 사고를 갖고 있던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 내가.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펄벅의 모란꽃을 읽다 담임 샘한테 들켜서 "네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냐?"하던 핀잔을 먹었었다. 한 대 맞지 않을 걸 참 다행으로 생각했었지. 지금 그 담임 샘한테 한 마디 하고 싶다. "샘, 저 그 때 읽은 책들의 힘으로 선생질 하고 있어요."

 개밥바라기별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고들풀에게 이 소설 준이처럼 니 멋대로 해라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 : "없다!"